"금속노조 간부들이 안에 들어왔을 때 8월 말까지 버티면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정리해고를 안 하고 무급휴직 쪽으로 갈 것이라고 해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 정치적 발언들이 일을 키웠다. " "우리를 선동하며 강경투쟁으로 몰아붙였던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은 경찰특공대가 투입되는 등 압박이 심해지자 몰래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한 게 뭐가 있나. "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77일간의 불법 점거를 벌인 농성 가담자들은 한국경제신문 및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우리만 당한 꼴"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7일 평택경찰서 등에서 만난 농성 가담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는 "후회한다"고 했다. 6년간 생산직으로 근무했다고 밝힌 B씨는 "농성이 이렇게 장기간 계속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화살을 돌리는 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조원은 "당초 정리해고 대상자로 분류된 게 너무 억울해 농성에 동참했다"며 "하지만 별 소득도 없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에 따르면 노조 집행부는 지난달 26일 노 · 노 충돌이 빚어진 후 전체 조합원을 모아놓고 수시로 정신교육에 나섰다. 이탈자가 급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부에선 "지금 밖에 나가면 경찰과 사측 직원들한테 두들겨 맞는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농성자들은 지난 2일 사측의 단전조치 후에는 제대로 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C씨는 "처참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도 힘들었지만,밖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몰래 빠져나간 민주노총

지난 2일 타결을 눈앞에 뒀던 노사 간 '끝장 교섭'이 무위로 끝났던 건 노사 간 타협안을 내부 강경세력 150여명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털어놨다. 거부감을 느낀 온건파 86명이 결렬 선언 직후 한꺼번에 공장을 이탈했다는 것.

결정적으로 농성장 분위기를 뒤흔든 것은 경찰의 강제해산 작전이었다. 지난 4일 경찰이 사다리차와 컨테이너를 배치하고 특공대까지 투입하자 노조원들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노조원 김모씨는 "옥상 요새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특공대가 들어오니 겁나더라"며 "이후 내부 분위기가 대화 쪽으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경찰이 본격적인 압박에 나서자 장기 농성을 사실상 주도했던 민주노총,금속노조 등 외부세력은 공장을 몰래 빠져나갔다. 일부 조합원은 "민주노총이 한 게 뭐가 있느냐"며 크게 동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화염병 등 미리 준비

노조는 공장 점거에 앞서 장기전에 대비한 농성 물품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공장 출입을 완전 봉쇄한 채 사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극단적인 투쟁 방식을 택한 것이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새총 등 일반적인 '무기류'는 점거농성에 돌입하기 전 상당량 준비했다는 게 농성자들의 얘기다. 화염병 제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농성 초기였던 지난 6월3일 민주노총 등이 범국민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쌍용차 노조는 외부세력이 가세한 지 단 하루 만인 같은 달 4일 볼트 새총을 처음 꺼냈다. 300여명의 전투조를 구성,특별 훈련도 실시했다.

다연발 사제대포와 화염방사기 등 살상용 무기가 등장한 것은 노조 내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은 6월 말께다. 사제총의 경우 가스를 주입하거나 일반 폭죽 속 화약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조립했다. A씨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워낙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어서 용접기하고 쇠붙이만 있으면 뭐든지 1~2시간 안에 만들어 냈다"며 "다만 사제총처럼 기술이 필요한 무기의 경우 집행부 쪽에서 가져와 나눠줬다"고 전했다.

노조원들은 집행부 계획에 따라 조별로 움직였다. 부서별 대표자를 두고,이들이 집행부와의 회의 결과를 조원들에게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조재길/박동휘/평택=서보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