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프랑스를 여행했다. 국제학술대회 참가 겸 돌아가신 지도교수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에는 몽파르나스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페르라세즈 묘지가 있다. 사르트르,보부아르,위고 등 유명한 철학가나 문학가들이 묻혀 있어,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페르라세즈 묘지를 방문하는 날,지도교수 댁에 머물고 있던 필자는 꽃을 사기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사모님은 유대인들은 무덤에 꽃을 올리지 않는다며 정색을 했다. 꽃을 가지고 묘지를 찾는 것이 예법에 어긋나지 않음을 프랑스 친구들에게 사전에 확인했으나,유대인 전통은 달랐던 것이다. 그들은 꽃 대신 조약돌을 올린다고 했다.

묘지로 가는 길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사모님은 11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온 제자가 스승에게 꽃을 올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자신이 뭉개버렸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꽃을 사도 좋다고 우겼다.

필자는 굳이 유대인 전통을 어기고 싶지 않으며 마음의 꽃을 바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남편을 잃고 민감해진 아내와 스승을 잃고 난감한 제자는 그렇게 서로를 위하면서도 착잡한 심정으로 달리는 차안에 앉아 있었다. 결국,스승의 묘비 위에 허름한 돌 하나를 놓았다.

그때 마술같은 일이 일어났다. 같이 간 J가 묘비 주변에 흩어져 있던 여러 개의 조약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J는 장례식에 미처 참가하지 못해 우리와 동행한 두 명의 지인 중 한 명이었다. J는 그 하얀 조약돌들로 어떤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점점 길쭉한 줄기가 자라더니 그 위에 하얀 돌꽃이 피었다. "자! 봐요. 꽃이 두 송이나 놓였어요. " J는 꽃을 원했던 나와 조약돌을 원했던 사모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J의 지혜 앞에서,한국인이나 프랑스인이나 유대인이나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그 다음 필자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스리지성에 갔다. 이곳은 1952년부터 현재까지 6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어문학 석학들의 두뇌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앙드레 지드,움베르트 에코,바르트,데리다,그리고 지도교수 앙리 메쇼닉의 사진과 책들이 진열되고 있었다.

올해도 거의 20개국에서 100명의 학자들과 작가들이 모였는데,매우 인상깊은 순간이 있었다. 낮에는 모두 불어로 뜨거운 논쟁을 벌이지만,저녁의 낭독시간에는 각자 모국어로 발표를 하는 것이다. 낭독자의 모국어를 아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매번 낭독자의 음성과 운율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치 외국 음악을 듣듯,그 언어가 지닌 리듬과 낭독자의 목소리와 호흡이 서로에게 전해졌고,교감은 아주 강렬했다.

필자는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대화 부재현상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대화할 때,꽃과 조약돌처럼 살아나온 환경과 문화적 습성 때문에 갈등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꽃과 조약돌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금방 체념해버리거나,각자의 것을 주장하거나,어쩔 수 없이 동조하는 적극적 포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조약돌 꽃과 스리지성 낭독이 준 감동에서 대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듯하다. J는 한마디 말 참견 없이 침묵하고 있다가,묘비 앞에서 조약돌 꽃으로 갈등을 단숨에 해결했던 것이다.

스리지성에서의 낭독은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전율을 안겨주었다. 즉, 대화에서 중요한 것이 흔히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진정 대화의 새로운 가능성은 '말' 이전에 서로의 공감대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김다은 <소설가ㆍ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