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경영일선 퇴진을 발표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이 고향인 광주에서 모처럼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흘 전쯤 서울을 떠난 박 명예회장은 다음주 초에나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금호가(家)의 한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이 지난 몇달 동안 그룹 구조조정 현안들을 처리하는 와중에 동생인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동반퇴진 문제까지 터져 많이 지쳐있다"며 "광주에 내려가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짐을 털어버렸다"고 말했었다.

박 명예회장에게 광주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단지 고향이라서가 아니다. 최근 잇달아 터진 악재를 피할 수 있는 휴식처여서도 아니다. 광주는 금호아시아나의 태동지다. 부친이자 금호아시아나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은 광주에서 처음 기업을 일으켰다. 지난 1946년 17만원의 종자돈으로 미국산 중고 택시 두 대를 마련해 광주택시를 설립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안팎으로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박삼구 명예회장으로선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공간이다. 실제 그룹 관계자는 "고향에 머무는 동안 심신의 피로를 달래면서 향후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구상을 하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광주에는 또 고 박인천 회장의 묘소와 노모 이순정씨의 자택이 있다. 박 명예회장은 부친의 묘소를 찾아 "경위야 어찌됐든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고 박인천 회장의 영가(靈駕:영혼이란 뜻의 불교 용어)가 모셔져 있는 전남 순천의 송광사도 찾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는 작고한 형님들인 고 박성용 · 박정구 회장의 영가도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박 명예회장은 광주에 머물면서 많은 번잡한 생각들을 정리할 것 같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