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기배우 브룩 실즈는 산후 우울증에 걸렸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회복됐다. 병력을 숨기지 않고 체험을 바탕으로 우울증 극복 방법을 담은 책까지 펴냈다. 라듐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도 평생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남편의 제자와 사랑에 빠져 비난을 받고 각종 질병을 달고 다니면서도 연구에 몰두하며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았다.

처칠 역시 만성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우울증을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동네 개에 비유해 '블랙 독'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모두 우울증을 잘 다스린 사례들이다.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침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뇌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길 때 나타난다. 이혼,가족의 죽음 같은 정신적 충격이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질병이기도 하다. 특히 경제적 풍요에 동반되는 선진국형 병이란 특징을 갖는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 정신적 공허를 느끼거나 심한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잘 생기는 까닭이다.

우리도 먹고살 만큼 풍요로워졌기 때문인지 우울증 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4~2008년 우울증 환자 진료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환자에 대한 항우울제 투여 횟수는 6820만여 회로 2004년의 4480만여 회에 비해 무려 52.3%나 증가했다. 여성 투여량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많았고 노년층의 복용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1세기 인류를 괴롭힐 주요 질병으로 우울증을 꼽았다. 2020년에는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2위에 오를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미국에선 성인 10명 중 1명이 우울증 환자이고 유럽에선 우울증 약을 두통약이나 소화제처럼 먹을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린다. 쉽게 걸리지만 약물 · 심리 치료로 80% 이상 완쾌될 만큼 잘 낫기 때문이다. 문제는 감기가 만병의 원인이듯 우울증 역시 방치할 경우 다른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다 자살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도 체질과 무관하게 누구나 우울증 환자가 될 수 있고 일단 걸리면 조기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우울증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아예 기피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더 깊은 관심과 대책이 절실한 때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