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5200억원,1조1330억원,6573억원….

국내 기업 '빅3'로 꼽히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가 지난 2분기 올린 영업이익이다. 세 회사 모두 글로벌 경영위기 이전인 지난해 2분기와 엇비슷하거나 보다 많은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어닝 서프라이즈(깜짝실적)'를 만끽한 기업은 '빅3'만이 아니다. 화학,철강,중공업 등 대부분 업종의 기업들이 해외 주요 경쟁사에 비해 준수한 실적을 보였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모든 상장사가 지난 2분기 중 흑자를 내는 진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원화약세로 인한 환율효과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국 주요 기업들의 실적은 경이로운 수준"이라며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기 전에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시장을 선도하고 개척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기에 더 강해진 한국 기업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침체를 기회로 삼아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거둔 곳은 전자업계다. 2007년부터 반도체 가격이 폭락해 어려움을 겪었던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위상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지난해 2분기 46%였던 두 업체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올 2분기 61%까지 상승했다. 세계에서 판매되는 D램 5개 중 3개가 국내 업체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반면 한동안 20%대의 점유율을 유지했던 파워칩,프로모스,난야 등 대만 3사는 업황 악화로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올해 2분기 점유율이 13.8%까지 추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데다 미세공정과 관련된 기술도 경쟁업체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완제품 TV 부문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계 평판 TV(LCD와 PDP TV)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31.4%에서 올해 2분기 33.9%로 뛰어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LED(발광다이오드) TV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먹혀들었다"며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이 엔화 가치 상승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지 못했던 것도 한국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선전이 눈부시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난 6월 기준 점유율은 7.54%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4.41%에 비해 3%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유럽시장 점유율(신차등록 대수 기준)도 올해 상반기 3.8%로 지난해 3.1%에 비해 0.7% 포인트 올랐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라

한국 기업들이 들쭉날쭉한 업황에도 불구,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은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LED TV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LED TV를 'TV의 새로운 종(種)'이라고 명명하고 적극적으로 LED 제품군을 확대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고급 TV에 대한 잠재수요는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전략은 적중했다. 기존 LCD TV보다 최고 2배가량 비싼 가격에도 불구,'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만큼 주문이 밀려들었다. 시장조사기관인 NPD에 따르면 상반기 미국 LE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94.8%(수량기준)에 달했다. 소니 도시바 샤프 등 경쟁사의 제품출시가 늦어지는 것을 틈타 사실상 시장을 독식한 셈이다.

휴대폰 부문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제트폰,쿠키폰 등 풀터치스크린폰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중저가폰 중심의 노키아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그 결과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41.0%에서 올해 2분기엔 38.5%까지 떨어졌다.

자동차업계도 '어슈어런스(Assurance)프로그램'(고객이 신차 구입 후 1년 내 실직하면 차량을 되사줌)과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경쟁업체들의 고객들을 빼앗아오는 데 성공했다.

◆긴축기조 유지하며 신성장동력 마련

주요 대기업들의 하반기 경영전략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경기침체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만큼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4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예산 축소 기조를 2010년까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최고경영진들이 이용하는 전용기를 매각하고 스포츠마케팅 예산도 30%가량 줄일 계획이다. LG전자도 해외공장 생산라인 재배치와 아웃소싱 확대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방침이다.

자동차 업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폐차 보조금제'와 같은 소비 진작책의 '약발'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 마련한 돈을 미래사업 발굴에 투입하고 있다. 경기침체 기간 중 마련한 승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래사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3년까지 총 5조4000억원을 투자,사업장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반면 전 제품의 에너지 효율은 40% 높일 계획이다. LG화학은 'LCD 산업의 쌀'로 불리는 유리기판 양산을 위해 1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LG디스플레이도 3조2700억원을 8세대 디스플레이 라인 증설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