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일이다. 해외 연수에 이어 1년 정도 사내 연수를 마치고 기획실에 첫 발령을 받았다. 회사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경영학이나 해외 연수에서 봐온 선진 관리 방식과는 꽤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해야 할 일,하고 싶었던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자신과 의욕이 넘쳤다. 인사제도 개선,당시 유행하던 도요타 간판 방식이나 IE 등의 생산관리 기법 도입,수주 방식 표준화 등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순차적으로 시행했다. 열정적이었던 데다 2세 경영자가 갖는 프리미엄 덕분에 별 저항 없이 개혁은 진행됐고,개선 속도도 빨랐다. 아니,그렇게 보였고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몇 년을 달려오다가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형식적 시스템 때문에 관리 방식만 더 복잡해진 듯이 느껴지는 결과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 자신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그런 실패가 당연하다는 듯 의욕만 넘쳤던 아마추어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그때서야 발견하게 됐다. 아버지는 아들이 실패해 볼 기회를 굳이 막지 않았다. 아마추어를 프로로 만드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생각에서.

요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그 당시를 많이 생각한다. 그때 이후로 나는 '아마추어는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일을 하고,프로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의욕만 넘치는 아마추어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따지기도 전에 무조건 한다는 마음부터 정한다. 어려운 일일수록 용감히 도전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마음가짐은 맞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큰 차이는 목표를 향해 가는 방법에 있다. 프로는 10을 가기 위해서는 1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고,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 간다. 반면,아마추어는 해야 하는 일이라며 10만을 얘기한다. 목표는 얘기하지만 이에 이르는 과정을 알려 주지는 못 한다. 그러고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을 원망한다. 내가 그랬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도 아마추어적 사고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그저 각자가 생각하는 해야 할 일,하고 싶은 일만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정작 목표에 이르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못 하는,그리고는 서로 욕하고 아우성치는 모습까지 말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과 달리 실제 달라진 것은 애가 아니라 그 애를 바라보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이해심과 관점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을 탓 하기 전에 자신의 미숙함을 먼저 되돌아보는 프로 리더십의 본질은 '내 탓이오'다.

박종욱 로얄&컴퍼니(옛로얄TOTO)대표 jwpark@iroya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