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우리 의술은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인도 의술과 함께 아라비아 상인을 거쳐 들어온 서방의 약재와 의료지식까지 활용했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우리 의술의 기반이 갖춰지는 시기는 조선시대다. 세종때 편찬된 '향약집성방'에는 궁중이나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약방문 1만706가지와 침 · 뜸법 1476가지가 실려 있다. 세종때는 또 중국의서 153종과 인도의 불교의서 등을 참고,병을 증세별로 분류해 치료법을 소개한 '의방류취'도 선보였다.

우리의 독자적 의학 체계가 세워진 것은 '동의보감'이 나오면서부터다. 선조가 '조선 실정에 맞는 의서를 내라'는 명을 내린 지 17년 만인 1613년(광해군 5년) 초간본 5편 25책이 간행됐다. 허준(1539~1615)이 주도한 이 대형 프로젝트에는 양예수 김응탁 등 쟁쟁한 의원들도 참가했다.

동의보감은 16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적 성격을 지녔지만 단순한 편저(編著)가 아니다. 기존 의서들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상당부분 우리 풍토나 체질에 맞게 새로 해석하고 바꿨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읽혔을 만큼 명성이 높았다.

허준은 어의(御醫)로서 선조와 광해군을 치료한 공로로 당상관의 반열에까지 올랐다고 실록에 전한다. 중인출신으로는 파격적인 대우다. 그러면서도 동의보감을 편찬할 때 일반 백성들을 따뜻하게 배려했다. 우리 산과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와 치료기술을 자세히 소개해 의료 대중화를 이끌었다. 양생(養生)을 통해 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 예방의학의 기초를 마련한 것도 업적으로 꼽을 만하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이 같은 독창성과 의학발전에 미친 영향 등이 높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내용이 독특하고 귀중하며 현대에도 사용되는 등 동아시아의 중요한 유산일 뿐 아니라 세계 의학사에 대한 기여도 상당하다"고 극찬했다 한다.

우리 전통의학은 표준화가 잘 안돼 있고 체계적 임상시험도 미흡한 편이다. 하지만 서양의학의 난제를 풀어낼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동의보감의 여러 처방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전통의학이 서양의학과 서로 보완 발전해서 이 땅의 질병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그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