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지난달 2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을 확정짓기 위한 마지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제 이 안은 교과부로 넘겨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고 한다.

교육과정 개정은 국가 공교육의 미래를 좌우하는 사안이라 많은 관련 인사들이 토론회장에 모여 발표내용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토론회는 한마디로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입장과 관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책임 있는 학자들이라면 소신과 철학을 갖고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터인데 마치 통과의례를 치르는 듯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에 눈을 감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새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목표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와 똑같다. 사교육을 경감시키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며 단위 학교에 교과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처방이다. 하지만 이번 처방은 우리 교육계의 병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7년 개정한 교육과정은 고교에서 선택형 교과를 많이 개설하게 해 수업 부담 경감과 자율성 확대를 꾀한 것이었다. 모든 내용을 다 배우기보다 개인이나 학교가 선택한 과목만 심화학습하자는 취지였다. 이 안은 5년여에 걸쳐 전국적인 의견수렴을 거쳐 만들어져 내년 중학교 1학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자문회의 안은 이를 시행도 해보기 전에 똑같은 명분으로 이번에는 세분화됐던 과목을 다시 교과군(群)으로 합친 다음 '과목을 줄였으니 학습 부담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통폐합(축소) 대상이 된 과목은 도덕과 예능 과목이다. 이는 자칫 수업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덕성교육과 감성교육을 약화시키는 대신 국 · 영 · 수 등의 도구과목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입시 위주의 풍토에서 이는 결국 여타 과목의 시수를 조정해 국 · 영 · 수로 돌리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을 지향하는 현장의 많은 교사들에게 혼란과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미래형 인재는 도구적 지식으로 무장한 냉철한 두뇌의 소유자로 족한가. 도덕성과 풍부한 감수성은 국가발전을 위해 접어두는 게 좋은가. 만일 그 결과 사교육이 더욱 성행하고 공교육은 도구과목 위주로 편중되고 만다면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미래의 시민인 우리 학생들일 것이다. 초 · 중 · 고는 대학과 달리 보편교육과정으로 인성교육과 감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제 당국은 긴 호흡으로 공교육 정상화의 초석을 놓는다는 심정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살펴봐야 할 때다.

박찬구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