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 제목 자체가 유행어로 뜬 공포영화의 대명사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있는 게 어디 지난 여름에 한 일뿐이랴.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청문회에선 부인이 2004년 8월 이래 어디서 무엇을 얼마에 샀는지 낱낱이 공개됐다.

이쯤 되면 우리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자(빅브라더)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파놉티콘(원형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용카드와 휴대폰,인터넷 등 디지털기기의 편리함에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통째로 내주다시피 한 까닭이다.

백화점 DM을 받아볼 때마다 놀라게 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같은 사람에게도 지난달 구입품에 따라 배달되는 DM의 내용이 달라진다. 화장품을 샀을 땐 화장품,슈퍼를 이용했을 땐 생필품 관련 쿠폰이 오는 식이다.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백화점에선 빤히 아는 셈이다.

외상인데다 5% 할인되고(전월 사용실적이 있는 경우) 포인트까지 쌓인다며 좋아하지만 실은 그 모두가 단순한 혜택이 아닌 자신의 구매 패턴을 비롯한 행동 양식을 알려주는 대가다. 백화점이나 카드사 측에선 개인의 그같은 자료를 모아 고객의 성향 분석 및 마케팅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주간지 '이그재미너(Examiner)'에 따르면 신용카드사들이 데이터 프로파일링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구매가능 상품을 알아내는 정도를 넘어 잠재적 불량고객,그러니까 장차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까지 찾아낸다고 한다. 개인의 과거 소비 행태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잠재 불량고객'으로 찍히지 않으려면 현금서비스 이용을 줄이는 건 물론 술집과 마사지숍 결제도 자제하고,부부생활 상담비용 지불도 피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그런 곳에서 신용카드 사용이 잦아지면 재정적 업무적 가정적 스트레스가 크다는 신호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신용사회란 말은 일종의 덫이고,신용카드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곤충을 유혹해 잡아먹는 식충식물같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실정과는 거리가 있다며 무시할 게 아니라 자신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자주 점검해볼 일이다. 인식하지 못한 새 특정부문의 지출이 늘진 않았는지,이상징후나 문제의 소지는 없는지도 꼼꼼히 살피고.법인카드를 쓰는 사람은 특히 더 그렇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