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존재 장내서 싸울때니 더 빛나, 미디어법관련 총사퇴 명분없어
[다산칼럼] 의회정치의 덫 '장외투쟁'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들러리 역할밖에 할 수 없었기에 의원직을 내던지고서라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투사들'에게 사람들은 신뢰와 지지를 보냈다. 더러는 정치적 제거 대상으로 찍혀 국회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살벌한 통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말없는 성원을 보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밑거름이 돼 한국 역사에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아로새겨질 수 있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반발한 민주당은 예고했던 대로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빼어 들었다. 조문정국 이후 분위기가 처진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지지층 재결집을 위한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하지만 실제론 민주당의 속내는 복잡불편하다. 충청권 등 민주당의 약세 지역 의원들이 의원직 사퇴서 제출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며 반발하고,일부 호남 중진을 포함해 상당수가 지도부에 사퇴서를 내는 데 주저하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그런 가운데 의원들이 국회에 곧바로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고 당대표가 의원들로부터 사퇴서 처리를 위임받은 것을 놓고 진정성이 없다는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의원직을 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어떻게 얻은 배지인가. 당선을 향한 지역구 의원들의 행군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래서 목숨보다 더 중한 의원직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원직을 던진다니 장하고 가상하다고 여겨야 마땅할 터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초리는 그렇게 따듯하지만은 않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의장이 받지도 않고 국민이 믿지도 않을 구태의연한 의원직 사퇴카드를 검토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사실 의장이 받거나 국민이 믿는다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의원직 총사퇴는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MB 정권이 시종 독선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야당의 존재마저 무시한다 비난하지만,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의회정치를 통해 국리민복에 힘쓰라고 뽑아준 의원들이 의회를 버리는 걸 그리 탐탁스레 여기지 않는다.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더 국회라는 의회민주주의의 장을 굳건히 지키며 항상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민의를 반영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정 곳곳에 강건한 야당의 목소리가 절실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견제란 반드시 뜻을 관철시켜 깃대를 꽂아야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수로 밀려도 이성과 논리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 말없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소리가 그런 야당의 목소리다.

민주당은 국회로 복귀해야 한다. 장내에서 하다 안 되면 장외로 가거나 장내,장외 투쟁을 병행하는 구태의연한 변신전략에 국민은 신물이 난다. 민주당으로서는 국회라는 공간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장내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기에 장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지만 정작 장내에서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이상 이를 통해 정당한 싸움에 주력하는 길도 있다.



굳이 장외로 나가겠다면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불법부당성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정도지 시민사회단체,재야세력과 연계해 정권타도 투쟁을 벌이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장내에서,산적한 민생입법 현안들을 정정당당히 비판할 건 비판하고 대안 낼 건 대안을 내며 함께 처리해 나가는 고심참담한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미디어법에 대해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일은 비단 일단 입법을 관철시킨 한나라당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작 미디어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만큼 아까운 의원직 총사퇴를 결행하기에 이른 민주당이야말로 왜 그랬는지 국민에게 침착하고 소상하게 알리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