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최고급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가 국민차 비틀(폭스바겐)에 먹혔다. ' 2005년부터 폭스바겐 인수의 꿈을 불태우던 포르쉐가 끝내 거꾸로 폭스바겐에 인수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폭스바겐과 포르쉐가 이날 경영감독위원회(이사회)를 열고 폭스바겐이 총 80억유로를 들여 포르쉐를 인수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폭스바겐은 우선 포르쉐 지분 49.9%를 인수한 뒤 나머지 지분을 매입,2011년부터 합병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포르쉐 이사회는 50억유로의 증자 계획과 카타르투자청(QIA)에 폭스바겐 지분 17% 인수 옵션을 매각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연 650만대 판매

이에 따라 폭스바겐은 2018년까지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로 거듭난다는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섰다. 폭스바겐-포르쉐 합병이 완료되면 중저가 대중차인 폭스바겐 세아트에서부터 럭셔리카 아우디는 물론 슈퍼카 람보르기니 부가티 포르쉐까지 총 10개 브랜드를 아우르는 공룡 자동차업체로 재탄생한다. 지난해 640만대를 판매한 폭스바겐은 연간 약 10만대를 판매하는 포르쉐와 함께 세계 1위 도요타(760만대)의 뒤를 바짝 쫓는다. 포르쉐는 판매 및 생산 대수로는 폭스바겐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지난해 순이익은 64억유로로 폭스바겐(47억유로)보다 많은 알짜회사다. 통합회사는 폭스바겐과 포르쉐가 지분 50% 이상을 갖고 독일 니더작센 주정부가 20%,QIA가 14.9~19.9%로 3대주주가 되는 구조다.

◆피흐 vs 비데킹?b엇갈린 운명

포르쉐의 폭스바겐 경영권 쟁탈전을 처음 시작한 벤델린 비데킹 포르쉐 최고경영자(CEO)는 폭스바겐 인수 과정에서 회사가 100억유로에 달하는 빚을 지게 해 거꾸로 인수당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폭스바겐 측의 퇴진 요청도 받았다. 피터 슈미츠 오토모티브데이터 애널리스트는 "질투에서 비롯된 포르쉐와 폭스바겐 간 혈투가 결국 페르디난트 피흐 폭스바겐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고 표현했다. 피흐 회장은 포르쉐와 폭스바겐 창업자이자 폭스바겐 '비틀'의 개발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다. 볼프강 포르쉐 포르쉐 회장은 포르쉐 박사의 친손자다.

1983년 엔지니어로 포르쉐에 첫 입사해 1993년 CEO 자리에 오른 비데킹은 파산 직전의 포르쉐를 세계 럭셔리 스포츠카 지존으로 되살린 주역이다. 올초만 해도 포브스지로부터 유럽 최고 경영자로 꼽혔다. 2005년 9월 포르쉐 경영위원회에서 처음으로 폭스바겐 경영권 장악을 위한 야심찬 계획을 내놓은 뒤 포르쉐 포르쉐 회장과 함께 폭스바겐 인수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비데킹의 지나친 야망이 포르쉐의 운명을 뒤바꿔놨다"고 묘사했다.

같은 해 폭스바겐 CEO로 취임한 피흐도 엔지니어 출신이다. 취임 직후 적자에 허덕이던 폭스바겐을 흑자로 전환시키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1998년 한 해에만 포르쉐와 맞먹는 부가티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하며 포르쉐 견제에 나섰다. 또 최고급 세단 '페이톤'을 내놓으며 폭스바겐이 중저가 이미지를 벗고 고급화하는 데 앞장섰다. 비데킹이 폭스바겐 인수에 나서자 호시탐탐 그를 퇴진시키려 애쓰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피흐는 비데킹처럼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역공'을 통해 포르쉐를 손에 넣은 전술의 달인"이라고 전했다. 결국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4년여간의 경영권 다툼은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인 피흐가 친손자 포르쉐를 누르고 할아버지가 일군 2개의 회사를 통합,자동차 왕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매듭짓게 됐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