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모터쇼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컨셉트카'는 자동차 생산업체들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다.

공상과학(SF)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화려한 외관과 첨단 기술은 고객들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아 충성도를 높이기도 한다.

기술적 제약이나 수익성 같은 어려운 얘기는 미뤄두더라도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확 트이는' 컨셉트카는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통로다.

◆'고급 요트' 연상케 하는 메르세데스-벤츠

한 눈에 봐서는 자동차로 인식하기 어렵다. 바퀴가 없었다면 백만장자의 여가용 요트 정도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포뮬러 제로(0) 레이서'라는 이름을 가진 엄연한 '자동차'다.

이름처럼 현재 전세계 포뮬러 원(F1)의 트랙을 질주하고 있는 레이싱카에 사용되는 재질들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봅슬레이'나 '루지'같은 썰매의 특성을 가져왔다는 게 벤츠의 설명이다. 공기저항계수를 가장 효율적으로 줄이기 위해 요트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차에는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장착했다. 개발팀 멤버 명단에는 한국계 디자이너 조지 유(George Yoo) 씨가 이름을 올렸다.

◆'속도의 진화는 계속된다' 부가티

바라보는 순간 자사의 슈퍼카 '베이론'의 최고 시속 407km를 거뜬히 넘어설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동차 디자이너 브루노 델루스가 그려낸 부가티의 미래형 슈퍼카 '스트라토스'다.

이 차의 모양새는 지난 1934~1940년 생산된 부가티의 명차 '타입 57'의 유선형 디자인에서 영감을 따 왔다. 앞부분 모습을 보면 알파 로메오의 '6C 2500 밀레 미길리아'가 언뜻 느껴진다.

명품 경매대행업체 제임스 리스트에 따르면 이 차의 외관은 지난 1986년 작고한 공업 디자이너 레이몬드 로위 특유의 '아르 데코' 증기 기관차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미래적 낙천주의(Optimism)'가 컨셉트다.

◆BMW, '한국인이 만든 컨셉트카' 내세워

BMW의 '솔트 플랫 레이서'는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한 1인승 레이싱카다. 미사일을 연상시키는 차체가 인상적이지만 정작 모티브(Motive)는 금붕어와 카나리아 꽃에서 따 왔다고 한다.

'재사용(reuse)'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BMW의 설명에 따르면 이 차는 주변에 널려있는 바비큐 화로 뚜껑, 기름통 같은 '잡동사니'같은 자재들로 차체와 바퀴의 중심 부분인 휠디스크를 만들었다.

차체에 비해 극단적으로 큰 바퀴는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해 젤 나일론 소재를 채택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도 달릴 수 있게 설계됐다. 한국계 디자이너 리차드 김(Richard Kim) 씨의 작품이다.

◆2족 보행 로봇 '아시모' 뺨치는 혼다

세계 최초의 2족 보행 로봇 '아시모'를 제작한 일본 자동차업체 혼다가 지난 LA모터쇼에서 선보인 컨셉트카 '그레이트 레이스 2025'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전투기 '엑스윙'을 빼 닮았다.

이 차는 땅, 바다, 그리고 하늘까지 지구 전 지역을 24시간 달릴 수 있는 '미래형 차'를 컨셉트로 삼았다. 차량에 장착된 수중 음파 탐지기와 반향(反響) 위치 탐색을 통해 지형에 기민하게 대응, 속도와 차량의 전고를 신속히 변환시킨다.

'FC 스포츠(Sport)'의 앞 글자 FC는 '연료전지(fuel cell)'를 뜻한다. 양산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 디자인은 이 차가 조만간 세계적인 친환경차 '열풍'을 타고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게 한다. 3인승인 이 차의 운전석 옆에는 조수석이 없다. 마치 포뮬라 원(F1) 레이싱카처럼 차량 한 가운데 운전자가 탑승한다.

외관을 보면 튀어나온 부위가 없다시피 하다. 차체는 매우 낮아 보인다. 공기저항계수를 최대한 줄여 높은 연비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다. 혼다는 '미래의 수소연료 스포츠카'라는 표어를 달고 이 차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폭스바겐의 '만화 같은 상상'

폭스바겐의 '바이오 러너'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전시용 차량을 만든 것도, 컴퓨터그래픽(CG)으로 그린 것도 아니다. 공상 가득한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 한 점이 이 차의 전부다. 영화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에 등장하는 합체로봇 '데바스테이터'를 연상시킨다.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면 한낱 공상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이 네 바퀴 달린 1인승 자동차는 거친 비포장 길을 달리는 경주대회 '바자 1000'에 출전시키기 위한 차량이란다. '무한한 성능의 1인승 탱크'를 컨셉트를 잡았다는 게 폭스바겐의 설명이다.

듀얼 터빈 엔진을 달아 엔진 회전속도가 무려 50만 RPM(revolution per minute)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제트기용 엔진의 10만 RPM도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이다. 말 그대로 '컨셉트카'라고 할 수 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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