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전력청이 주관한 3조2000억원(25억달러)짜리 '라빅'발전소건설 프로젝트를 한국전력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수주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낭보로 전했으나 일부에서는 '속빈 강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총 발전소건설비용 중 80%인 17억달러를 가져가는 시공사와 주기기공급사가 중국기업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 돈을 투자해 현지에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고 이를 운영해 생산된 전기를 판매하는 사업권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해외 플랜트 수주'는 아니다. 정확하게는 달러를 써야하는 '해외사업권 획득'이다. 발전소 운영중 유지보수 비용을 한국이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다.

한전 컨소시엄이 사업시행사로 선정된 사실을 왜 '수주'라는 표현을 했는지 의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한 자원보유국을 상대로,한전의 발전원료 구매력을 활용해 한국 플랜트기업이 건설공사를 따내는 것과는 다르다. 더구나 한전이 산유국에 지불한 '기름값'을 발전소 건설을 담당한 한국기업이 회수해오는 '패키지 딜'은 더욱 아니다.

필자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수행해본 전문가들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중국기업에 발전소 건설을 맡겨본 적이 없는 한전이 해외에서 중국기업으로 하여금 발전소를 건설하게 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을 판매해 과연 얼마의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사회주의적 관행 때문에 중국 건설업체의 국제적인 신용도는 여전히 우리 건설업체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도 걸린다.

이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대규모 자금은 2014년 준공 전후까지 사용될 것이지만 그 수익 여부는 발전소 운영권이 만료되는 2033년까지 향후 20여년 동안을 줄기차게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3조원대의 대규모 해외사업에 공기업이 나서고 있으므로 최악의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국가시스템에 의한 국익 차원의 철저한 감독이 요구된다.

이번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참여 형태를 보면 국가차원의 조정능력 부재도 엿보인다. 한전 컨소시엄은 중국건설사를 시공사로,유럽계 컨소시엄은 한국 민간건설사를 시공사로 각각 동반했다고 한다. 한전은 '해외발전사업권 확보'를,그리고 민간건설사는 '해외플랜트수주'를 각각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어쨌든 한국의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해외사업에서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민간기업에 대한 발주권과 감독권을 가진 공기업이,해외에서 민간기업과 경쟁을 했다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국 민간기업끼리 해외에서 '제살 깎아먹기'경쟁을 했다고 해도 국익 차원에서는 불상사라 할 것인데 말이다.

한전측이 중국 건설기업을 동반하기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발전플랜트건설 물량이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한국 건설기업들이 독자적으로 해외발전플랜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경력 및 자격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의 해결책으로 한전 및 그 계열기업에서 갖고 있는 설계 및 조달경력을 민간기업이 넘겨받아 국제 발전플랜트건설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해외에서 발전플랜트 건설경력을 쌓는 중국건설기업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해외플랜트사업의 육성을 국가경쟁력 제고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 현 정부의 시각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자체적인 수익경영이 아무리 절실하다 하더라도 국민이 주인인 공기업은 국익 차원에서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재헌 <한양대 교수ㆍ기계공학/한국플랜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