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사는 최모씨(43)는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을 다음 달부터 피아노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3년 전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 거치기간이 끝나고 원리금 분할 상환이 시작되면서 월 대출금 상환액이 20만원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 봤지만 결국 자녀 사교육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최씨의 경우 주택 구입을 위해 일정 부분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나면서 불가피하게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대출금을 갚느라 소비는 물론 저축과 투자까지 제약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대출 상환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채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들을 부채클리닉 상담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빚내서 투자하기의 함정


대형 건설사에 다니는 김모 차장(41)은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 공무원인 부인과 맞벌이를 해 실수령액으로 1억원이 넘는 연소득을 올리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지만 은행 적금으로만 돈을 모아도 주택 구입과 노후 대비 등에 필요한 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이다.

그러나 김 차장의 가계부는 상처 투성이다. 한 달에 대출 원리금으로만 124만원이 나가고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은 1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은퇴 후를 대비한 돈은 전혀 모으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김 차장의 무리한 부동산 투자였다. 그는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부동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여러 건의 대출을 받아 수도권에 아파트와 재개발 빌라 등을 사 놓았다. 가진 돈을 모두 부동산에 투자하다보니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은 665만원에 불과하다.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은 구입 당시와 비교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고 대출 원리금만 꼬박꼬박 나가고 있다.

양재중 포도재무설계 팀장은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할 경우 투자 수익이 기대에 못 미쳐도 대출은 원래대로 갚아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출과 투자를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우선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집을 팔고 그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대출 원리금을 줄여서 확보한 돈은 적금과 적립식 펀드에 넣어 부동산에 편중돼 있는 자산 구조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지난해 가을 결혼한 신모씨(여 · 30)는 1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800만원의 빚을 지게 돼 결혼자금마저 부채 상환에 써야 될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신씨는 처음엔 별다른 생각 없이 신용카드 카드론을 이용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게 돼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졌는데 은행 대출을 받으려니 절차가 까다로울 것 같아 편한 대로 카드론를 받았다. 은행보다 이자율이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두 달 안에 갚으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생각보다 오래 입원해 있게 됐고 신씨는 다른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아 늘어난 병원비를 충당했다. 처음에는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한두 달 지나는 사이 대출 잔액은 오히려 늘어만 갔고 한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아 다른 카드사의 대출금을 갚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씨는 재무설계사의 상담을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의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받아 카드론을 갚았다. 대출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연 20% 가까운 고리의 카드론을 연 3%대의 대출로 바꿔 부담이 크게 줄었다. 신씨는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결국은 착각이었다"며 "단돈 1만원을 빌리더라도 대출받는 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마이너스통장과 결별하기

직장인 윤모씨(29)는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은행 직원의 설명을 듣고 2년 전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잘 활용하기는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대출금이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다.

마이너스통장은 여느 대출과 달리 일정한 상환계획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맹점이었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달 얼마씩 갚아야 한다는 식의 강제성이 없다 보니 대출금 상환이 체계적으로 안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마이너스통장을 쓸 경우 스스로 매달 얼마씩 갚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윳돈이 있을 때만 조금씩 대출금을 상환하다가 만기가 되면 기한을 연장하는 일이 반복돼 대출금이 줄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상환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자신이 없다면 마이너스통장 상환용으로 적금에 가입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통장으로 1000만원을 썼다면 1년 만에 1000만원을 모을 수 있는 적금에 가입해 만기 때 한꺼번에 대출을 갚는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