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15억명쯤 된다고 한다. 조만간 20억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인터넷에서 영어가 사실상 공용어가 되면서 배우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이젠 '번듯한 직장'을 잡으려면 영어를 웬만큼 해서는 부족하고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판이다. 영어교육에 더 치열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도 영어교육하면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열성적이지만 실제 성적표는 바닥권이다. 국제영어인증시험인 IELTS의 주관사가 지난해 40개국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이민 · 직업연수용 시험(GTM)에서 39위에 그쳤다. 중국 26위,일본 34위보다 처진다. 유학용시험(AM)에서도 28위로 그저 그런 성적을 냈다. 주관사측은 한국 영어실력을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내용을 오해하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많고 유창함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영어 사교육비가 연 15조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부모들 사이에 영어 하나만은 똑 소리 나게 가르쳐야 먹고살기에 편하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조기교육 바람을 타고 요즘 유행하고 있는 영어유치원만 봐도 그렇다. 1년 다니는데 드는 비용이 보통 1000여만원이고 심한 경우 1800여만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영어 원어민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어로 얘기하며 생활하고,일주일에 몇 차례씩 한국어 · 중국어 수업을 하는 데 이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부모들의 교육열을 탓할 순 없다.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기존의 교육방법이 별 효과가 없다니까 아예 몰입교육을 시켜보려는 의도일 게다. 문제는 그 정도다. 오직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인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지식을 주입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하는 얘기다. 더구나 학원마다 강사의 질과 학습내용이 천차만별인데다 교묘한 상술까지 겹쳐 교육과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합당한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조기교육은 간단한 계산법과 읽기 쓰기를 가르치는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영어숙련도 좋지만 아이와 감정을 공유하면서 균형있는 생각과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인성을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