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공사비가 1000억원이나 늘어났다는데 누가 동의하겠어요. 조합원 카페에는 동의서 없이도 열쇠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입주증 주세요. "

지난 15일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의 입주안내센터에서 20일 오후 입주를 앞둔 박모씨가 언성을 높였다.

이날 기자가 직접 입주안내센터에 들어서자 검은 양복의 경호원들이 입구를 막아서며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다. 입주 절차를 알고 싶다고 하자,안내하는 여성이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말했다.

같은 층에 마련된 조합 사무실.조합 측은 동의서를 내밀었다. 핵심은 공사비 증액.2005년 9월 총회 때는 총지출 금액이 7790억원이었는데,2009년 7월 총회에선 그 액수가 9287억원으로 약 1497억원 늘었다는 것.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열쇠를 주지 않고,공사 환급금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포주공2단지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은 이미 지난 7일 임시총회를 열어 과반수 동의를 받고 이 안건을 통과시킨 뒤였다. 그럼에도 조합은 입주를 앞두고 '동의서를 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입주 시작 하루 만인 지난 16일 조합과 입주 예정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급기야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입주민들이 동의서를 내지 않는다면 '조합원 개인별 건물 평수,대지지분,건축공사 원가는 얼마'라고 명시한 관리처분 계획안을 부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조합은 주장했다. 기존 사업비 예산 7790억원으로 공사를 하면 '싸구려 아파트'가 되기 때문에 공사비를 증액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조합이 공사비를 증액할 경우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 판례를 접한 반포주공2단지 재건축조합 측이 관리처분 무효소송에 휩싸인 반포자이의 경우와 같은 '입주 후 소송'을 미연에 막기 위해 입주민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지 않으면 집 열쇠를 주지 않는 방법을 동원한 셈이다.

이삿짐을 집앞에 쌓아둔 사람한테 열쇠를 무기로 동의서를 받아내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의사를 침해하는 행위다. 재건축조합 측과 이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간의 싸움에 입주민만 끝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


성선화 건설부동산부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