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한우물만 파다보니 어느새 명장 소리를 듣게 되네요. "

시계가 부의 상징이던 1960년대,시계수리공을 동경해 전라남도 순천의 한 시계수리점을 찾았던 까까머리 학생은 어느덧 한국 최고의 시계 전문가로 거듭났다. 20일 노동부가 '이달의 기능 한국인'으로 선정한 남재원 골드&해시계 대표가 주인공이다.

남 대표는 현재 서울지역 백화점 점포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시계와 보석 등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정확하고 빠른 수리로 정평이 나있다. 정교한 솜씨 때문에 해외 명품 시계 소유자들도 본사 수리센터보다 그의 가게를 찾는 일이 많다.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 대표는 17세인 1966년 순천의 삼성당에서 시계수리공 보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밤새워 시계를 분해하고 수리하기를 3년,시계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남 대표는 본인의 길을 시계에서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서울로 향했다. 1969년 서울의 한 백화점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에도 솜씨와 성실성을 인정받아 다른 백화점들로 잇따라 스카우트됐다. 특히 당시 외국의 고가 시계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정권 실세들이 그의 가게를 자주 드나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제가 못 고치는 시계가 없었어요. 한창 때였죠.그런데 백화점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다 보니까 제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

1992년 서울 신촌에 자기 점포를 열게 되면서 시계에 대한 그의 열정은 우리나라 시계기술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남 대표는 시계공이 혼자서 작업할 때 유용한 '마스터 펀치'와 '휴대용 시계의 압착식 조립공구'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그가 고안한 'W확대경''시계부품 확대 영상카메라''다용도 척' 등도 시계수리 공정과 품질향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남 대표는 올해 2월 동서울대학 시계주얼리학과 겸임교수로 임용돼 현재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학기 초 아무것도 모르던 학생들이 학기 말에 시계를 척척 조립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고.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남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심장병 환자 수술비를 지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봉사활동으로 2004년 서울사랑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 대표는 시계는 세심하고 정교한 손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인들이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분야인 데도 그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뺏기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특히 성장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시계분야를 사양산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고.그는 "기술 잠재성만 따지면 한국이 스위스와 같은 시계 강국에 뒤질 것이 없다"며 "시계 기능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