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조합원 마음 못 읽는 쌍용차 노조
경찰이 정문을 장악,다시 찾은 쌍용자동차 본관 안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개인 서랍은 열려 있고,사무실은 케케묵은 음식 찌꺼기 냄새와 소화기 분말로 엉망이었다.
도난 사건의 진실은 두 달째 지속되고 있는 공장 점거 농성이 풀리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갈라진 마음은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28년간 쌍용차 조립공장에서 보낸 한모씨는 "지난달 26일 지게차 사건 때 다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날 전만 해도 함께 일하던 직원들 안부도 묻고,통닭과 맥주도 사다주고 그랬어요. 하지만 지게차로 밀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마음을 싹 접었습니다. "
점거 농성 중인 근로자들의 마음도 불신과 증오로 얼룩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농성장에서 이탈한 15년차 기감 정모씨는 "가장 억울한 이들은 해고당한 우리들 아니냐"고 항변했다. 50m를 족히 날라가는 거치형 새총으로 정문을 지키고 있는 옛 동료들을 향해 볼트와 너트를 쏘는 심정엔 증오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도 책임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20여 만명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노조 지도부가 가장 큰 원인제공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달 26일 행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조 지도부는 사측의 양보안(추가 희망퇴직,100명 무급휴직,경기회복시 100명 우선 재고용,부품업체 고용 등)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해고당한 노조원들의 생존권이 가장 큰 관심사라면 지도부는 노조원들의 의사라도 물었어야 했다. 지도부가 요구하는 대로 농성 중인 500여 명의 해고 근로자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옛 동료들은 과연 그들을 마음 속으로부터 받아들일까. 같은 근로자(비해고 생산직)의 마음조차 얻지 못하는 노동운동이 설 자리가 있는 것인지 노조 지도부에 새삼 묻고 싶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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