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졌어?" 20일 출근 재개를 앞두고 800만원짜리 방송 장비가 끝내 없어진 것을 안 곽용섭 쌍용자동차 홍보2팀 차장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실 문을 잠궜었는데 부수고 들어갔나봐요. 전임 사장님이 재도약 캠페인을 벌이면서 장만한 건데…."

경찰이 정문을 장악,다시 찾은 쌍용자동차 본관 안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개인 서랍은 열려 있고,사무실은 케케묵은 음식 찌꺼기 냄새와 소화기 분말로 엉망이었다.

도난 사건의 진실은 두 달째 지속되고 있는 공장 점거 농성이 풀리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갈라진 마음은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28년간 쌍용차 조립공장에서 보낸 한모씨는 "지난달 26일 지게차 사건 때 다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날 전만 해도 함께 일하던 직원들 안부도 묻고,통닭과 맥주도 사다주고 그랬어요. 하지만 지게차로 밀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마음을 싹 접었습니다. "

점거 농성 중인 근로자들의 마음도 불신과 증오로 얼룩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농성장에서 이탈한 15년차 기감 정모씨는 "가장 억울한 이들은 해고당한 우리들 아니냐"고 항변했다. 50m를 족히 날라가는 거치형 새총으로 정문을 지키고 있는 옛 동료들을 향해 볼트와 너트를 쏘는 심정엔 증오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도 책임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20여 만명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노조 지도부가 가장 큰 원인제공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달 26일 행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조 지도부는 사측의 양보안(추가 희망퇴직,100명 무급휴직,경기회복시 100명 우선 재고용,부품업체 고용 등)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해고당한 노조원들의 생존권이 가장 큰 관심사라면 지도부는 노조원들의 의사라도 물었어야 했다. 지도부가 요구하는 대로 농성 중인 500여 명의 해고 근로자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옛 동료들은 과연 그들을 마음 속으로부터 받아들일까. 같은 근로자(비해고 생산직)의 마음조차 얻지 못하는 노동운동이 설 자리가 있는 것인지 노조 지도부에 새삼 묻고 싶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