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제위기는 탐욕과 무책임의 결과이며 새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과단성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위대함은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뤄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

오바마 미 대통령이 "쓰러져가는 미국을 재건하겠다"며 취임연설을 한 지도 20일로 꼭 6개월이 된다. 취임 당시 80%에 달했던 지지율이 요즘 57% 선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오바마는 금융위기를 해결하고 거세진 세계의 반미 감정을 줄이는 데 까맣던 머리가 셀 정도로 고심스런 나날을 보냈다.

지난 반년을 돌아보면 그의 국정운영엔 일종의 공식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순위를 정하고 대화를 통해 실천가능한 대책을 마련하며,시행 시한을 명시해 밀어붙이는 게 그것이다. 경제정책을 예로 들어보자.오바마가 취임과 동시에 한 일은 경기부양책이었다. 그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이란 카드를 내놨다.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를 극복하고 취임 한 달만인 지난 2월 하순 787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 월가 개혁의 칼을 빼들었으며,GM 등 '빅3' 자동차업체 구조조정에 손을 댔다. 지금은 의료보험을 개혁하고 새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는 데 전력투구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인상적인 건 '스피드'다. 그는 신속한 정책 시행을 위해 시한을 설정했다. 월가 금융사엔 6월8일까지 자본확충 계획을 내고 11월9일까지 완료하도록 했으며,GM과 크라이슬러는 3월 말까지 생사여부를 결정하고 두 달 내 회생작업을 끝내도록 했다. 이 같은 '타임 테이블(시간표)'은 막강했던 전미자동차노조(UAW)를 백기 항복하게 만들고,GM이 42일 만에 파산보호(법정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속도전은 유능한 인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바마는 경쟁자라도 능력이 있다면 적재적소에 썼다. 정치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외교 수장으로 삼고,'람보'처럼 저돌적 추진력을 가진 이매뉴얼 하원의원을 백악관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장관직에 공화당원을 기용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엔 특사를 임명해 일을 맡겼다. 대통령 자신도 직접 수많은 사람을 만나 국정철학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공화당 지도부를 수시로 찾아 설득전을 폈으며,인터넷과 타운홀미팅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치철학이 다른 라이벌이라도 진정성을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5개월이 지났다. 국민들이 지난 대선에서 몰표를 몰아준 것은 제발 일 좀 하는 정부를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기업규제 행정복합도시 등 전 정권이 남긴 대못과 정부의 무능력,사회적 갈등은 여전하다. 주요 자리에 특정인사만 쓴다는 비판이 적지 않고 정치철학이 뭔지도 불분명하다. 하루아침에 국정 중심으로 떠오른 '서민'이란 구호가 포퓰리즘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후에 대비한 한국의 전략은 무엇인지,날로 강력해지는 중국에 대한 대응전략은 어떤 게 있는지,기후변화협약의 태풍은 어떻게 해결할지 현안이 쌓여 있다. 아쉽게도 국민들은 이런 굵직한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어떤 목표와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

강현철 국제부장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