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를 보면 중요한 사건 하나가 계기가 돼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곤 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은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다음 단계로 발전한다고 했다. 사회 현상에서도 하나의 사건이 그 시대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낸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과 약속한 대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 대통령은 오랜 기간 동안 전 재산의 사회환원을 생각해왔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 전 재산을 쾌척한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은 우리나라 기부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대통령의 전 재산 기부는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등 우리나라 기부문화에 대한 사회적 화두를 던졌다. 부의 세습을 당연시하는 가족중심적인 사회 문화 속에서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것은 여간한 결심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10명 중 8명이 유산을 가족에게만 남기겠다고 답한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다보스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꺼냈다. 그가 말한 '창조적 자본주의'란 자본주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자산을 더 많이 쌓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훗날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부는 사회공동체 혼란과 계층간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어 사회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부'라는 것이 한 개인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사회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기에 사회와 함께 할 때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5년간 최고 기부자 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회장이 407여억달러를 기부해 가장 많이 베푼 부자로 선정됐다. 빌 게이츠,조지 소로스,윌리엄 배런 힐튼 등 미국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이 나눔에서도 수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부자들의 순위와 기부자 순위가 거의 같기 때문에 기부문화의 선진국이라 불린다고 생각한다. 재산만 많다고 모두 부자가 아니다. 그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때문에 존경 받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특징은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일반 국민들의 소액기부가 주를 이루고,개인 고액기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소득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이제는 우리도 경제와 사회 규모,사회적 품격에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고액 개인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를 만들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지도자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눔에 참여해 나눔을 실천하는 고액 개인기부자들의 모임이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벌써 29명이나 참여하면서 새로운 나눔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나눔이 함께하는 사회야말로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이번 이 대통령의 기부를 통해 더불어 함께 사는 행복공동체를 위해 나눔이 함께하는 선진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을종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