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유리에 사는 백모씨(여 · 29)는 얼마 전 가계부를 살펴보다가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보장성 보험료 지출이 한 달 가계 수입의 20%에 육박해 저축과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문제는 어떤 보험을 해약해야 할지 선뜻 판단이 안 선다는 점이었다. 4~5년 전에 가입한 보험을 해지하자니 그동안 낸 보험료가 아깝고 무턱대고 해약했다가 정작 필요할 때 보장을 못 받게 될까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흔히 보험을 건물의 기초공사에 비유한다. 재해나 질병 등에 대한 대비가 없는 재무설계는 기초가 약한 건물처럼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중요성에 따라 보험을 제대로 가입하기는 쉽지 않다. 보험은 내용이 복잡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데다 주변 사람의 권유에 못 이겨 별다른 고민 없이 가입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무설계의 기초를 튼튼히 하면서 불필요한 보험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험 구조조정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보험 가입에도 순서가 있다

질병,사고,상해,사망 등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비를 해 둔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돈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소득으로 소비를 하고 투자와 저축도 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보험료 지출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

보험 가입에도 순서를 정해 놓고 필요성이 큰 것부터 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가입 1순위로 꼽는 보험은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실손보험)이다. 실손보험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때 본인이 부담한 금액을 보상해 주는 상품이다. 실손보험 외에 추가로 보험에 가입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중대질병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중대질병보험은 암,심근경색증,뇌졸중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진단자금이나 수술자금 명목으로 목돈이 나오는 보험이다.

실손보험과 중대질병보험에 종신보험을 추가하면 보험 포트폴리오가 완성된다. 실손보험과 중대질병보험으로 질병 및 상해에 대한 기본적인 보장을 받고 종신보험을 통해 가장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유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질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윤기림 SK모네타 수석 컨설턴트는 "보험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이 적으면 발생 확률이 높은 일부터 대비하고 자금여유가 생기면 일어날 확률은 작지만 치명적인 일에 대비하는 것이 기본 요령"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재무상황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보장을 한 개 상품으로 묶어서 제공하는 통합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통합보험은 개별 상품에 가입하는 것보다 20~30% 저렴한 보험료로 상해,질병,배상책임 등에 폭넓게 대비할 수 있고 한 상품으로 가족 모두에 대한 보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미 여러 개의 보험을 가입해 둔 상태라면 굳이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통합보험에 새로 가입할 필요는 없다. 김지훈 SK모네타 수석 컨설턴트는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통합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험료 측면에서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복가입 보험이 구조조정 1순위

소득에 비해 보험료 지출이 많다고 판단될 때는 우선 보장 내용이 비슷한 보험에 2개 이상 가입해 있지 않은지를 살펴야 한다. 성격이 비슷한 보험에 2개 이상 가입한 경우 해지 대상을 고르는 기준은 보장 규모와 보장 기간이다. 예를 들어 종신보험을 2개 들어 놓았는데 보장 기간이 100세인 것과 80세인 것이 있다면 100세 상품은 남겨두고 80세 상품을 해지하는 것이다.

종신보험을 정기보험으로 대체하는 것도 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정기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죽었을 때 피보험자(유가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는 종신보험과 같다. 단점은 가입자가 60세 이전에 죽을 경우에만 유가족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점인데 종신보험의 취지에 비춰본다면 60세까지만 사망보험금을 보장받아도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종신보험은 가장의 조기 사망에 대비하는 게 주 목적인데 가장이 60세 이후에 죽는 경우라면 자녀들도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음이기 때문에 가장의 죽음이 유가족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우승 희망재무설계 컨설팅팀장은 "30세 남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정기보험의 월 보험료가 종신보험보다 10만원 이상 저렴하다"며 "절약된 보험료로 적금이나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보장성 보험과 별도로 필요한 것이 노후 준비를 위한 연금보험이다. 전문가들은 2개 이상의 연금 상품에 가입하되 원금 보장이 되는 상품과 원금 보장은 안 되지만 운용 실적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늘어날 수 있는 상품에 함께 가입할 것을 권한다. 노후 자금인 만큼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돼야 하지만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분을 보전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2개 이상의 연금 상품에 가입한 경우 연금 수령 시기는 5~10년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55세부터 연금을 받던 사람이 65세가 됐을 때 새로운 연금을 추가로 받게 되면 10년간 물가 상승으로 연금의 실질가치가 떨어진 부분을 새 연금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