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추진으로 금융권 종사자들의 여름휴가 분위기가 예년과 달라졌다.

5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사 등 민간 기업들은 직원들의 등을 떼밀어서라도 휴가를 보내려는 곳이 많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돌아오라는 뜻이지만 비용 절감 의도도 담겨 있다.

공공기관들은 휴가 사용에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넉넉한 휴가를 보장했다가 자칫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상당수 기관장은 휴가 계획이 없거나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 금융권 "휴가 떠나라" 독려
은행과 보험권에서는 올해만큼 `휴가 인심'이 좋을 때가 없었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자신의 여름휴가 계획을 먼저 소개한 뒤 "이렇게 예약을 해놔야 계획이 흔들리지 않는다.

여러분도 미리 계획을 세워서 재충전의 기회를 모두 갖는 문화를 만들자"며 직원들의 휴가를 독려했다.

대우증권은 정기휴가(5일) 등을 활용해 5일 이상 연속으로 쉬도록 하는 컴플라이언스 휴가제를 도입하고 휴가계획을 일괄 접수했다.

국민은행도 최대 5천200명까지 자사 연수원과 호텔, 콘도를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이 연간 5일인 자기계발휴가를 적극 활용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리프레시 휴가제도'를 도입해 모든 직원이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외환은행은 연차휴가 가운데 연속 5일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했다.

이처럼 휴가를 권장하는 이유로는 대부분 직원의 `사기 재충전'을 들고 있다.

하지만 연월차 수당이라도 아껴서 인건비 지출을 줄여보자는 속셈도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연월차로 길게는 1개월까지 자기계발휴가를 가도록 권장하고 있다.

본사 직원은 징검다리 휴일이나 연휴를 전후해 연차 휴가를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휴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메리츠화재는 연차휴가를 100% 사용하도록 임단협을 맺었다.

현대해상도 최소한 연차휴가의 절반은 쓰도록 권유하고 있다.

◇ 공공기관 "휴가는 조용히"
금융공기업 등 공공기관들은 차분한 분위기다.

`경제가 안 좋은데 여유 부린다'거나 `역시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유사 업무 담당자들의 휴가가 겹치지 않도록 업무대행자를 지정하고 인수인계를 마친 뒤 여름휴가를 가도록 했다.

직원이나 간부나 해외여행은 되도록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자기계발 휴가 3일과 연차휴가 중 의무 사용해야 하는 3일을 활용해 여름휴가를 갈 수 있지만 정기적으로 금융시장 상황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내야 해서 연말쯤에나 가는 직원들이 많다.

일부는 의무 휴가일수 때문에 휴가 기간에 나와서 일하는 직원도 있다.

수출입은행은 권장 휴가 기간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경제 상황을 고려해 해외여행은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이 은행 관계자는 전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경제위기 탓인지 심리적으로 좀 위축된 측면도 있고 아무래도 공기업 직원이라는 점도 있어서 휴가를 길게 쓰거나 해외로 휴가를 가는 직원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는 "공기업 평가 등으로 툭하면 입방아에 올라 휴가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고 싶지 않다"며 "특별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CEO들 "휴가중 마음은 경영에"
금융계 기관장과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상당수는 별도로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아예 휴가를 가지 않겠다는 기관장도 있고, 상황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기관장도 있다.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하겠다는 CEO들도 휴가 중에 경영구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오는 27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내려가 21세기경영인클럽에서 주최하는 '국제경제질서의 변화와 우리기업의 대응' 세미나에 참석하고 위기 이후의 금융환경 변화와 감독정책 방향, 서민금융 지원 확대에 대해 구상할 생각이다.

윤용로 기업은행장도 다음달 말께 3∼4일간 쉬면서 하반기 경영 구상을 할 계획이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이달 말께 1주일간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면서 독서를 하고 경영 아이디어를 찾을 생각이다.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은 이달 말 제주도에서 열리는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할 계획이다.

이휴원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은 이틀가량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반기 금융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전략을 구할 예정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대우건설 매각 등 현안이 많지만 8월 둘째 주에 일주일 휴가 일정을 잡아뒀다.

민 행장은 지난해 초에 대외적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공지한 뒤 비밀리에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리먼브러더스 인수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평소 '펀 경영'을 강조하는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휴가에 적극적이다.

이달 초 직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휴가계획을 미리미리 세우라고 공식적으로 권유했고 자신도 다음달 초에 가족들과 경주 문화유산 탐방에 나설 생각이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다음달 초에 일주일간 쉬기로 했으며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도 비슷한 시기에 며칠간 휴가를 낼 생각을 하고 있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일정을 잡지는 못했지만 사흘 정도 날을 비워 등산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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