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신문사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SK에너지 회사 로고가 박힌 편지 겉봉에 펜으로 또박또박 쓴 '신헌철'세 글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과는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만나 인사를 주고 받았던 터였는데 직접 편지를 보내오다니 뜻밖이었다. 한번 만난 기자에게 무슨 말을 담아 편지를 보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편지를 열어봤다. 두툼한 느낌의 편지지 두장을 까맣게 가득 채운 반듯한 글씨가 눈에 쑥 들어왔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지난 일요일은 하지(夏至)여서 그런지 대낮같은 밝음이 저녁 8시 가까이도 바깥을 훤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을 앉은 자리에서 주욱 외울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은 그다운 시작이었다. 그는 얼마 전 CEO(최고경영자)에서 한발 물러나 이사회 멤버로 SK에너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2013년 대구세계에너지총회 조직위 위원장을 맡는 등 대외행보를 늘리고 있다.

그는 "8월7일이면 입추"라며 "요즘 들어선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여름의 푸르름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적었다.

1972년 SK에너지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해 정유업에 몸담아왔던 그는 처음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마라톤 이야기가 이어졌다. 42.195㎞에 달하는 마라톤에 처음 도전하게 된 것은 회사일로 나빠진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건강을 되찾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건강하고 일이 잘 되고 있을 때 그것이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동지(冬至)같이 밤이 가장 길 때를 유념하자는 뜻으로 불우이웃 돕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마라톤 사회봉사였다. 신 부회장은 한 번 마라톤을 뛸 때마다 1만원의 후원금을 내주는 후원자들의 이름을 등번호에 함께 새겼다. SK에너지는 임직원들과 지인으로부터 들어온 후원금만큼의 금액을 '매칭펀드'격으로 또 내놨다. 그는 "사회봉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이 됐고 그간 23번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해 12억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썼다"고 했다.

신 부회장은 "SK에너지가 사회 공헌을 위해 연간 400억원 이상을 사용해도 불우이웃을 도와주어야 할 일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적었다. "불우이웃돕기 마라톤 완주 행사를 계속하고자 합니다. " 편지지에 그가 "올해도 달리겠다"고 쓴 문장은 눈으로 읽어들였지만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힘이 있었다.

신 부회장은 이렇게 편지를 매듭짓고 있었다. "하지 때의 싱그러운 밝음을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아껴서 동지 때의 어둠을 빛으로 밝히는 행복열매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뛰길 자청한 그에게 건강의 기원을 담은 박수를 보낸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