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정책 편 미국등과는 상황달라, 정책기조 유지해 회복기반 다질때
[시론] '출구전략' 시그널만 줘라

출구전략 논의가 한창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지난해 하반기 이후 풀린 유동성을 환수해 자산가격 버블과 물가급등 가능성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의 여러 금융완화 조치들에 대한 수습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실행할 시점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하나 풀어보자.먼저 현재의 유동성이 과한가에 대한 논란이다. 본원통화나 협의통화(M1)는 지난해에 비해 매우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광의통화(M2) 혹은 그 이상으로 유동성의 범위를 넓혀가면 증가세가 오히려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금융부문에는 돈이 넘치지만 실물경제로 파급되지는 않고 있다.

물가 급등 가능성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금융완화가 물가급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늘어난 유동성과 경기회복이 겹치면서 수요압력이 크게 높아져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는 가까스로 저점에서 벗어나는 단계에 있다. 향후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한다 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GDP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미쳐 물가상승 압력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의 물가수준보다는 주택 등 자산가격 상승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주택가격 상승은 규제완화 및 각종 개발계획과 맞물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전국적으로는 주택가격이 반년 이상 큰 폭의 전월 대비 하락세를 지속하다가 최근 들어 미약하게 상승세로 전환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출구전략 논의 배경과 실행 가능성에 견주어 보아도 우리나라의 출구전략 논의는 이른 감이 있다. 예컨대 미국은 금융부문의 붕괴와 그에 따른 대규모 경기후퇴로 인해 정책금리를 0% 수준까지 낮춘 데다 장기국채와 모기지증권 매입 등 비정통적(unorthodox)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전례가 없는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큰 형편이다. 이에 비해 금리정책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금융완화정책은 통상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습이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초인플레이션을 경고할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금융완화가 폭넓게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세도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경제가 경기 저점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조차 뚜렷하지 않은 형편이다. 따라서 당장은 금융 · 재정 완화기조를 유지해 경기회복의 기반을 다지고 회복력을 유지 · 강화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조바심으로 성급하게 정책기조를 전환해 불황을 장기화시켰던 1937년 미국의 지불준비 강화조치와 1990년대 일본의 소비세 및 금리 인상 조치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번 경제위기에는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안일한 인식도 일조했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통화정책의 시차를 정확히 고려해 물가 급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일 때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혹 주택가격 상승이 문제가 된다면 주택담보 대출 조건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

아울러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독자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세계경제 회복세 및 주요국의 정책대응과 흐름을 같이하는 출구전략 논의와 실행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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