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쇠고기는 비싼 축에 들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가 쇠고기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은 우리와는 사뭇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내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첫 경영수업은 쇠고기와 관련된 두 가지 얘기로 시작됐다.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은 얘기다. 학교를 졸업한 후 1년여의 일본 연수를 마치고 막 귀국해 회사에 첫 출근한 날이었다. 당시 사장(지금은 회장)이었던 아버지는 언론계에 꽤 오래 몸담고 계시다 뒤늦게 사업을 시작했고,언론인의 기질상 결코 쉽지 않다던 사업을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첫 출근이어서 정신없을 때 비서실에서 사장님이 찾으신다는 연락이 왔다. 사장님….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장난을 많이 치며 격의없이 커온 내가 이제 회사에서는 아버지를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게 어색했다. 사장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아버지는 차를 한 모금 드시더니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느닷없이 한마디 던지신다. "니하고 나하고 매끼 송아지 한 마리씩 잡아먹고 살 거 아이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 표정의 내게 뒤이어 하시는 얘기는 "더 잘 먹고 더 잘 산다고 매끼 송아지 한 마리씩 잡아먹고 살 것도 아닌데,사업한다고 해서 돈벌이에 집착하지 말고 사업가로서 옳은 길,바른 길 가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고 하신다. 그래야 기업도 오래 간다며….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이신다. "네가 쇠고기 스테이크를 사먹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라면도 제대로 못 먹은 사람 앞에서 스테이크 먹은 얘기를 하는 순간 너는 죄를 짓는 거다. " 검소한 부모 밑에서 자라 그리 허투로 쓰고 다니는 아들놈은 아니라 생각하지만,앞으로 기름 때 묻은 공장 직원들과 함께 뒹굴 줄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으셨나 보다. 하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새 죄짓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첫 출근 날,첫 경영수업을 받은 그 당시에는 이 얘기를 어떻게 느끼면서 들었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그 분위기와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고,경영윤리와 배려라는 두 이름으로 각인돼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몇 년 후면 나 역시 아들에게 아버지의 경영수업을 전해야 할 나이가 된다. 사실 내 아들은 이미 나를 통해 이 얘기를 여러 번 들었고,우연히 할아버지에게 확인까지 했다. 그러니 이 얘기를 또 꺼내면 짜증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아들이 첫 출근하는 날,이 수업을 한번 더 하려고 한다.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켜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숙제이기 때문이다.

박종욱 로얄&컴퍼니대표 jwpark@iroya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