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피치의 오판' 그후 8개월…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더불어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로 꼽히는 피치(Fitch) 실사단이 7일 방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쎄요. (피치가) 워낙 납득하기 힘든 전망을 내놓는지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관계자의 목소리는 곱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냉랭하기까지 했다.

정책당국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8개월 전 피치가 내놓은 이해 못할 경제전망 때문이다.

피치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10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다음 날인 11일엔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17개 금융회사의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10월21일 "한국 경제는 국제 금융시장의 어려움에도 양호하다"는 전망을 내놓은 지 불과 20일 만에 갑작스레 전망을 바꾼 것이다.

피치의 전망 수정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약 체결로 한 고비를 넘기는가 싶던 국내 금융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11월10일 1152였던 코스피지수는 이틀 뒤 30포인트 떨어졌고 원 · 달러 환율은 1329원에서 1359원으로 급등했다.

당시 피치는 전망을 수정하면서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들었다. 수출에 편중된 경제구조 탓에 한국의 2009년 경상수지가 228억달러 적자에 달할 것이고,외환보유액 대비 외채비율도 지나치게 높아 대외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국내 금융회사들이 즉각 반박했지만 시장의 불안심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로부터 8개월이 흐른 지금 피치의 전망은 하나도 맞은 게 없다. 경상수지는 지난 상반기 216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6월 말 외환보유액도 2317억달러로 여전히 견조하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회복을 이룰 것이란 긍정적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지만 피치의 전망은 틀려도 너무 틀렸다.

피치는 이번 실사 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 중 한국의 신용등급을 수정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우리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되돌려놓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전망으로 스스로 흠집을 낸 피치의 신뢰도가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이태명 경제부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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