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각 꾸미는 '제3언어'로 각광

말하는 사람의 일방적 소통도구 '한계'
[Cover Story] 인터넷 언어는 쌍방간 의사 소통의 장애물?
인터넷 시대에도 말과 글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이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일반적인 문자와 구분되는 뜻에서 인터넷 언어, 사이버 언어, 전자 언어라고도 한다.

이러한 인터넷 언어는 기존 언어를 축약하거나 새롭게 만든다.

기성세대들은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특히 10~20대들은 컴퓨터를 벗어나 일상생활에서도 활발하게 쓴다.

이들은 이러한 단축어를 단순한 재미로만 여기지 않고 새롭게 생각하고 꾸미는 도구로 여기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미디어 학자는 '제3 언어의 출현'이라고까지 얘기하고 있다.

⊙ 컴퓨터 출현이 인터넷 언어 만들었다

국내 인터넷 가입자 수는 15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국민 3명당 1명꼴로 인터넷을 쓰는 것이다.

거의 모든 가구가 인터넷을 쓰고 있으며 특히 10~20대들의 인터넷 사용은 두드러진다.

인터넷은 이메일이나 채팅 메신저 등을 이용한 의사 소통 도구로 쓰여지고 있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소통은 편지나 전화와는 다르다.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을 최대한 간결하고 생동적으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또한 네티즌들은 자신들만이 공유하고 통용되는 언어를 만들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런 성향이 결국 인터넷 언어를 만들고 있다.

사이버 언어가 처음 사용됐을 때 이들 언어는 모두에게 생소했다.

어법의 파괴나 무책임한 언어 사용의 주범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사이버 언어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이버 언어는 점점 보편적으로 용인하는 글이 됐다.

인터넷 언어의 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옥스퍼드 대사전에는 B4(Before)나 ic(I see)와 같은 인터넷 단어가 수록돼 있다.

you를 U, are를 R, to를 2로 표현하는 것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사이버 언어를 따로 모은 사이버 언어사전도 출간되고 있다.

인터넷 언어도 자연어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사이버 언어는 경제적이다?

인터넷 언어는 물론 컴퓨터 대화 방식인 채팅에서 시작됐다.

채팅을 하려면 자판을 쳐서 실시간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빠른 말을 느린 글이 따라잡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특히 대화방에서는 대화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더 빨리, 많은 말을 해야 했으므로 축약은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메일을 멜, 반갑습니다를 방가, 주인공은 쥔공 등으로 바꾸는 축약이 먼저 시도됐다.

그러다가 이보다 더 간결한 축약이 이뤄졌다.

ㅋㅋ, ㅎㅎ과 같은 문자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축약은 문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는 어형들이었다.

의도적인 축약과 탈락은 입력 속도를 높여 언어의 경제성 원리를 만족시켰다.

그러나 경제성의 원리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감을 좋게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불필요한 음운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옙(예), 했당(했다), 나오쥐(나오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때로은 컴퓨터로 쓸 수 있는 모든 표현방식을 총동원해 글을 만들기도 한다.

속칭 외계어이다.

이런 글은 쓴 사람만이 알 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사이버 언어의 한계는

[Cover Story] 인터넷 언어는 쌍방간 의사 소통의 장애물?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이버 언어가 말과 문자가 가지는 표현을 모두 담을 수없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ㅎㅎ의 경우 하하와 호호, 후후, 흐흐, 히히 등 웃는다는 뜻을 가진, 뉘앙스가 다른 여러 형태의 의성어의 모습을 모두 담을 수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언어와 문자의 제한을 가져온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듣는 이(청자)보다는 말하는 이(화자)가 더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므로 기존의 의사소통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사이버 언어의 주 사용처인 대화방과 게시판, 전자우편 등은 모두 화자 중심적인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거나 언어를 통한 유희를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진정 의사소통이 아니다.

특히 세대간의 의사소통 단절이 심해질 수 있다.

이것이 심해지면 타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존재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욕망이나 의도를 알리고 감정이나 기분을 표현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은 전적으로 청자의 이해가 중요하며 청자가 논의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 화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때 비로소 양자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서로 이해의 과정이 생긴다"고 말한다.

⊙ 사이버 언어의 미래

사이버 언어는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사회의 변동과 함께 이러한 언어는 계속 그 활용도가 늘어날 전망이다.

모든 이들이 사이버 언어를 알아듣고 이해할 때에는 독자적인 언어로도 자리 잡을 전망이다.

하지만 사이버 언어가 추구하는 길은 문어적 속성보다는 구어적 속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사용자들은 되도록 인터넷 공간에서 보다 구어적 속성에 가까운 언어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사이버 언어를 완벽한 구어적 속성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문자로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결핍된 구어적 속성을 보충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구어적 속성을 보충하는 보완재 역할만을 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이와 관련, 미디어 학자인 빌렘 플루서는 "알파벳이 근원적으로 상형문자에 대항했듯이 현재에는 디지털 코드들이 자모음 코드들을 추월하기 위해 그것들에 대항하고 있다"며 "현재 알파벳은 새로운 코드에 의해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