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 · 중산층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엊그제 저신용 근로자 및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 보증 확대 등에 2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서민생활안정대책을 발표했고 그에 앞서 중산층 가계를 압박하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과 주택 가격 상승 억제책을 강구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반기 경제운용은 서민생활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라"고 밝힌 이후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서민 · 중산층에 대한 애정 공세를 펴고 있는 셈이다. 서민 생활 개선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부자 정권'이란 이미지를 탈피해 이들 계층으로 지지 기반을 확산시키려는 취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권의 지지 기반 확충은 사실 대단히 시급하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530만표에 달하는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지만 지금의 지지율은 30% 수준에 그친다. 국정의 효율적 운영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서민과 중산층을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직접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한 것도 저변 확대 및 서민들과의 소통 강화 노력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서민 · 중산층 끌어안기 노력이 일시적 이벤트나 말의 성찬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점이다. 단지 인기영합적 시혜책에 그친다면 예산만 낭비되는 결과로 연결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서민 대책이 저소득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의 자립 기반을 확충하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집행해 나가야 한다.

사교육비 경감 문제도 말은 쉽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단시일 내에 공교육 수준을 학부모들의 기대만큼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방과후 수업 강화,학원 심야영업 제한 등을 통해 많게는 매달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계획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다. 시중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는 것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중산층 보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시장 원리를 크게 저해하지 않는 방안을 찾는 데 최대한의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국민들의 생활은 어렵기 짝이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은 56.4%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이전인 96년(68.5%)에 비해 12.1%포인트나 감소했다. 반면 빈곤층은 같은 기간 11.3%에서 19.0%로 크게 늘어났다. 수많은 중산층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일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것보다 급한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빠른 경제회복세를 구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의 기반이 되는 투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와중에 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마저 실패해 가뜩이나 나쁜 고용사정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서민대책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총력을 경주해 하루라도 빨리 이를 처리해야 한다.

'강부자' '고소영'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도 대단히 시급하다. 이 정부에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초기 조각의 실패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발탁된 인사들의 재산규모가 서민들의 상상을 넘어선 데다 재산 축적과정에서의 비리가 드러난 경우도 적지 않았던 점 등이 원인이다. 정부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해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정부가 부자, 기득권자들만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사로도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조만간 있을 개각 등 앞으로의 인사에서는 공신 그룹뿐아니라 폭넓은 범위에서 인재를 등용하고 재산축적 과정도 철저히 점검하는 등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