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무더기 해고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게 됐다. 여야 정치권과 노동계의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협상은 법 시행을 앞둔 마지막 시한까지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이에따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법 규정이 어제부터 시행에 들어감으로써 당장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직면한 일자리 위기를 외면하고 그동안 싸움만 벌이면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온 정치권의 작태는 정말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당이면서 주도권을 갖지 못한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협상에서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 민주당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법 시행 유예 자체를 거부한 양대 노총도 마찬가지다. 이를 핑계로 법안 상정을 거부한 추미애 환노위원장의 처사 또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직권남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안의 화급함에도 불구하고 직권상정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김형오 국회의장 역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 문제가 해법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여야 3당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이 참여하는 6인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지만,민주당은 이를 거부하고 이제 법 적용 유예논의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한나라당은 자당 의원들만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환노위에 기습 상정하는데 이르렀고,민주당은 이에 격렬히 반발하고 나섬으로써 또다시 혼란을 피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대량 실업은 이제 피하기 힘들게 됐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향후 1년간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70만~100만명에 이른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기업 부담이나 가라앉은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중 많은 비율이 해고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고 보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실업대란이 가시화되는 사태에 대해 정치권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는 바로 내 가족의 일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하루라도 빨리 협상을 재개해 합의를 도출해내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계 또한 그들이 매달리고 있는 명분으로 인해 오히려 비정규직들이 일자리에서 내몰리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