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값을 반으로 내리도록 명령했다. 우유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조치를 열렬히 환영했지만 곧 문제에 봉착했다. 기존에 우유를 팔던 사람들이 더 이상 우유를 공급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유의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젖소용 건초를 반값에 공급토록 명령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농부들은 반값에 건초용 작물을 심지 않았다. 우유가 제대로 생산될 리 없었다. '암시장'이 형성되고 우유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시장가격에 대한 인위적 통제는 '시장의 복수'를 부를 뿐이다. 그럼에도 인위적 가격통제는 정부에는 유혹이 아닐 수 없다. 해당되는 재화와 용역이 공공재로 인식될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약가(藥價)정책은 왜곡 요인을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국민 개보험(皆保險)체제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는 약을 팔려면 의료보험에 등재해야 한다. 약제의 '수요독점자'위치를 점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재정 절감을 위해 약가를 엄격히 통제한다. '약제비 적정화'는 통제의 의미를 순화시킨 명분일 뿐이다. 약가의 결정에서 '시장원리'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약제사용량과 약가의 연계는 그 중 한 사례일 뿐이다,보험등재를 위한 신약(新藥)협상 당시의 예상사용량을 초과해 사용된 경우 또는 효능이 추가되거나 보험 인정범위가 확대됨으로써 사용량이 늘어난 경우에는 약가를 인하토록 돼있다. 약효가 좋아 많이 팔렸다는 이유로 가격(급여)을 인하하는 것은 '성공을 처벌'하는 전형인 것이다. 성공을 우대하지 않는 것만큼 반(反)시장적인 것은 없다.

약가정책의 반시장성은,적법한 규정과 기준에 따라 이미 등재돼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의 가격이 시민단체의 청원에 의해 인하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백혈병 치료제로 쓰이는 'A'라는 신약이 등장하면서,기존 백혈병 치료제인 'B'의 가격을 기준으로 'A'의 약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B'의 약가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참고가격 역할을 하는 'B'의 가격을 낮춰야 신약인 'A'의 약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B'의 약가인하를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냈고,1년 만인 지난 6월 보건복지가족부는 직권으로 'B'의 가격을 14%인하했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발매 신청 및 허가 단계에서 다양한 기준에 의해 '심사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시판되면서 정기적으로 '재평가'과정을 거친다. 이번 사건으로 시민단체의 청원에 의해 '임의 재평가'가 이뤄진 셈이다. 예측불허의 '비경제적'이유로 가격이 인하된다면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신약개발은 오랜 기간을 요하고 또한 성공확률도 낮다. 따라서 제약산업의 특징은 높은 연구개발(R&D) 투자에 있다. 연구개발을 가능하게 하려면 성공한 신약에 대한 '보상'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공정한 가격을 쳐주는 것이 최선의 보상인 것이다. 시장의 유인 시스템은 경제의 산소와 같다. 반시장적 약가정책은 제약 산업을 서서히 질식시킬 뿐이다. 시장에 역행하는 약가정책은 미래 성장동력의 선택지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청원에 기초한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 조치는 전형적인 '가격통제'다. 시민단체의 운동 목적이 환자의 약제비 경감이라면 그 차액만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차라리 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자유에 대한 위험은 좋은 뜻은 가졌으나 정열적인 그들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은밀한 침해 속에 숨어 있다"는 경구가 떠오른다.


조동근<명지대 교수ㆍ경제학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