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번 넥타이 바꿔매는 패셔니스타
알고보면 고객 뇌까지 분석하는 최고의 마케터


그가 좋아하는 멋내기 소품은 몽블랑 시계와 샤르베 커프스 링.사무실에 20여개의 넥타이를 두고 TPO(시간,장소,상황)에 따라 하루에 세 번을 바꿔 매는 패셔니스타 CEO(최고경영자).오십줄도 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이마 위로 살짝 빗어 올려진 한 가닥의 노란색 브리치는 그만의 아이콘이 됐다.

이해선 CJ오쇼핑(옛 CJ홈쇼핑) 대표(54).'마케팅의 귀재'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그에게선 도회적 세련미가 물씬 풍겨난다. 그러나 외면의 이미지와는 달리 국내 최정상급 마케터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치열한 자기 계발의 연속이었다.

올해로 27년째를 맞는 그의 직장생활 철칙 하나. '세상 없어도' 오전 7시면 반드시 회사 내 자신의 자리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때부터 업무 시작 전까지 매일 1시간 정도 어학에 투자한다. 영어잡지 기사 한 꼭지 정도는 매일 읽어야 하고,프랑스어는 샹송 가사를 외우며 감각을 유지한다. 향후 현지 시장 진출을 겨냥해 배우고 있는 러시아어는 새로운 개척 분야다. 물론 일본어와 중국어는 이제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맬컴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제시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인 '1만시간 법칙'의 한 전형인 셈이다. 그는 남다른 외국어 실력 덕분에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들과 두터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도 있게 됐다.

대학 2학년 때부터 33년째 '평생 공부'로 삼고 있는 외국어는 '마케터'로서 그의 삶에 소중한 자산이 됐다. 1982년 삼성그룹 공채로 제일제당에 입사했을 때 첫 부서는 마케팅과 무관한 설탕 판매관리팀이었다. 입사 직후 삼성그룹 전 직원 대상 영어시험에서 제일제당 내에서 1등을 차지한 덕에 사장의 특별 배려로 2년간 연수 휴직 특전을 얻었다. 당시 제일제당 사장은 입사 13년 만에 사장에 오른 삼성 내 초고속 승진의 상징인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대표는 대만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뽑혀 국립 대만정치대학에서 마케팅으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따고 돌아온 뒤 1985년 국내 소비재업계의 최고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던 제일제당 마케팅실에 합류하면서 마케터로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대표가 훌륭한 마케터의 제1덕목으로 꼽는 것은 독서다. 특히 외국 신간을 국내 다른 사람보다 나중에 읽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단다. 아마존닷컴의 마케팅 신간에 대해선 국내 누구보다도 '얼리 어답터'임을 자부한다. 그렇다고 책상물림은 결코 아니다. 매달 80쪽짜리 수첩 한 권을 소진할 정도로 메모광인 그가 메모에 집착하는 이유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연습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에 근무하던 시절 젊은 여성들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매니큐어를 칠하고,립스틱도 발라봤던 그가 경험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한 대목.최근 가장 심취해 있는 '뉴로 마케팅' 관련 서적을 읽다가 "마케터 중 뇌를 분석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체험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구절을 보고는 밑줄을 진하게 친 뒤 700만원짜리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자신의 뇌를 직접 찍어보기도 했다.

이 대표의 치열한 삶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름 휴가다. 그에게 여름 휴가는 해외 유명 대학의 7~10일짜리 단기 집중 코스를 이수하는 '지식의 재충전' 기회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마케팅 관련과정이나 중국 칭화대의 인문 경영학과정 등 수강료가 1000만원을 웃도는 최고급 코스를 자주 듣는다. 그 스스로 '코피 터지는 훈련'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이런 과정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이 간다.

그의 취미 또한 마케터답다. 최근 그는 주말에 틈나는 대로 목조각 명장을 찾아 전각을 취미 삼아 배우고 있다. 전각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가 그토록 흥분하는 단어 '브랜드'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브랜드 역시 '글자를 굽다''각인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은퇴 후 브랜드 마케팅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각을 파서 선물하는 게 그의 꿈 가운데 하나다.

이 대표는 중앙대부속 중 · 고교에 이어 중앙대 경제학과에 이르기까지 중앙대 계열 학교를 나왔다. 중대부속 중 · 고교 육성회장을 지낸 부친의 권유로 중대부중에 들어간 뒤 동일계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대학은 특차 전형을 통해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백용호 국세청장이 이 대표의 대학 같은 과 2년 후배다. 학창 시절 두 사람 사이에 이렇다 할 교분은 없었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특차 전형으로 입학한 4년 전액 장학생이라는 것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박승 교수의 애제자라는 점이 그렇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요즘 그는 자식 자랑에 입이 근질근질하다. 영어교사를 지낸 부인과의 사이에 둔 두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케터를 꿈꾸고 있어서다. 둘 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으며,첫째는 졸업 후 현재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이다. 이 대표 역시 공군 장교 출신으로,김호연 한나라당 천안을 당협위원장(전 빙그레 회장)과 공군 장교 동기인 인연으로 빙그레 마케팅실장을 잠시 맡기도 했다.

지난 3월 CJ오쇼핑 대표를 맡은 그에게 이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최고의 마케터'에서 '최고의 CEO'로 변신하는 것이다. '마케터 CEO'답게 그가 직원들에게 제시하는 CJ오쇼핑의 테마는 "마케팅으로 고객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홈쇼핑은 마케팅과 머천다이징의 완결판"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이 대표가 24년간 마케터로 쌓은 노하우를 통해 홈쇼핑 업계에 어떤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주목된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