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최근 중소기업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심화되고, 일부 우량 중소기업은 은행의 요구로 필요없는 자금까지 대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를 7개월 만에 인상하면서도 대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는 낮추는 등 금리도 차별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출을 하더라도 예금과 보험, 펀드 상품을 끼워파는 이른바 꺾기 관행도 재발하고 있어 금융감독당국이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우량기업 대출 강요..중기 대출 회피

3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감독당국이 올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순증 규모를 37조 원에서 32조 원으로 낮추면서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에 대한 문턱을 다시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대출이 더 어려워진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에 아우성치고 있다.

경남 양산의 신발 제조업체 최모 사장(56)은 "담보 없이는 은행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재 보증 한도가 소진된 상태여서 보증 한도가 새로 설정되는 내년 봄까지 어떻게서든 버텨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연 54억 원 가량 매출을 올리는 지방의 A 중소기업도 "매출 감소가 경영능력이나 기업경쟁력 저하가 아니라 외부 환경요인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지만 대출을 거절당했다"며 "은행들이 기업의 성장성이나 영업능력은 평가하지 않고 획일적인 재무제표 위주 평가로 대출하는 관행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용도가 높은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대출을 강요하는 실정이다.

금융당국과 체결한 외화채무 지급보증 양해각서(MOU)에 따라 전체 대출 증가액 가운데 중기대출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이나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면 중기대출도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중견기업 관계자는 "현재 특별한 자금 수요가 없지만, 은행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자금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며 "마땅한 운용처도 없어 은행이 요구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담보대출을 늘리면 중기대출도 어느 정도 늘려야 하지만 중기대출이 부실화되면 담당자와 지점이 문책 대상이 되기 때문에 무턱대고 대출할 수는 없다"며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미 신용도가 우량한 것으로 입증된 기업에는 자금이 부족하지 않더라도 대출할 것을 부탁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출금리, 대기업 내리고 中企 인상

은행들의 중견.대기업 선호 현상은 대출 금리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대기업대출 평균금리는 5.53%로 전월보다 0.06%포인트 하락했지만 중소기업대출 금리는 5.40%로 0.02%포인트 상승했다.

신용대출 금리는 5.81%로 0.09%포인트 인상돼 담보가 없는 대출자의 부담이 커졌다.

은행들은 예대금리차 확대를 통한 수익 올리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예대금리 차는 2.58%로 전월보다 0.06%포인트 확대됐다.

이는 99년 5월 2.88% 이후 1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저축성수신 평균금리가 연 2.84%로 7개월째 하락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경신한 반면 대출 평균금리는 5.42%로 7개월 만에 상승했다.

작년 10월말 이후 수신금리 하락폭은 3.47%포인트로 같은 기간 대출금리 하락폭 2.37%를 1.10%포인트 웃돌고 있다.


◇금감원, 中企대출 꺾기 제재절차 착수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더라도 예금이나 펀드 가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꺾기 영업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에서 꺾기에 대한 조사가 나오면 은행이 담당 중소기업에 전화해 꺾기를 했다고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며 "익명으로 고발하더라도 금액 등이 나오면 어느 기업인지 추적되기 때문에 기업이 고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현장검사를 통해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하면서 금융상품을 끼워판 사례를 다수 적발해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금감원은 4월29일부터 지난 달 20일까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16개 은행을 상대로 중소기업에 대출해주면서 예·적금, 펀드, 보험을 끼워 팔거나 후순위채 혹은 은행채 매입, 퇴직연금 가입 등을 강요했는지 정밀 조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이 신용위험을 거의 지지 않는 보증서 담보대출을 하면서 해당 기업의 자발적인 의사 없이 예금에 가입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활용해 잇속을 챙기는 것으로 강도 높은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꺾기' 실태를 유형별로 구분해 발표한 뒤 조만간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릴 예정이다.

제재심의위원회는 한달에 2번 개최되며 여기서 제재 수위를 결정하면 금감원장 보고를 거쳐 금융회사에 통보된다.

(서울=연합뉴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