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중국 출장을 다녀온 대기업의 장모 부장(46)은 며칠 전 받은 카드명세서를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당시 중국 바이어와 만나 쓴 접대비가 예상했던 것보다 20여만원이나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카드사에 물어보자 돌아온 답은 "중국 가맹점에서 쓴 카드가 원화로 결제됐기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최근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원화를 직접 받는 곳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도 매출전표를 원화로 끊어주겠다는 가게들이 많이 등장했다. 카드로 해외에서 결제할 때 환율변동 위험을 생각할 필요 없이 원화로 계산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현지 화폐 대신 원화 결제를 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현지에서 원화로 찍힌 매출 전표를 받더라도 나중에 한국에 와서 청구되는 금액은 더 불어날 수 있다. 해외에서 카드를 사용하면 '현지 화폐 결제→미국 달러로 변환해 글로벌 브랜드 카드사(비자,마스타 등)에 청구→국내 카드사가 원화로 변환해 고객에게 청구'라는 3단계를 거친다. 원화 표시로 결제를 하더라도 영수증에 현지 화폐를 원화로 바꿔 표시해 줄 뿐 실제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현지 화폐를 달러로 바꾸고,다시 원화로 환전하는 데 따른 수수료는 그대로 발생한다.

일부에서는 현지 화폐를 원화로 바꿔 표기할 때 각 가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율을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홍콩달러가 166원인데 이를 170원으로 계산해 영수증을 발급한다는 얘기다. 고객은 현지 화폐로 표기된 금액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영수증 전표에 찍힌 원화만 보고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되도록이면 현지 화폐나 미국 달러로 전표를 끊어달라고 해야 바가지를 쓰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장 부장과 같이 피해를 입는 해외 여행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환율을 이용한 신종사기의 일종이다. 피해 금액이 크지 않아 본인이 사기를 당한지도 모른 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해외 여행이 많은 휴가철을 앞두고 이 같은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여행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신용카드사들도 고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지할 필요가 있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