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CS),메릴린치,JP모건,씨티 등 KB금융지주의 유상증자 주간사를 맡은 외국계 IB들이 KB지주로부터 '주간사 선정을 취소한다'는 이메일을 받은 건 지난 25일 저녁이었다.

한국의 최대 금융지주사가 추진하는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라는 큰 딜을 손에 잡았다 놓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무실의 분위기는 침통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 은행의 뱅커들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초저가 수수료 때문에 지난 한 달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KB지주는 이달 초 유상증자를 위해 4개 IB를 주간사로 선정했다. 실사와 투자자 설명 등 업무가 시작됐지만 수수료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KB지주가 제시한 수수료는 증자금액의 0.6%.지난 2월 1조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했던 신한금융지주가 지급한 수수료는 2.5%였다. KB지주가 막강한 협상력을 동원해 가격을 4분의 1로 깎은 것이다. 그나마 신한지주의 유상증자 당시엔 JP모건,UBS,BNP파리바 등 3개사가 참여했지만 이번엔 4개사라 한 개 회사가 가져 갈 수수료는 더 적었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2.5%의 수수료도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며 "외국계 IB는 주식중개뿐 아니라 실권주를 인수하는 위험을 떠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수료는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투자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자본시장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IB들의 전문성을 감안할 때 무조건 깎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KB지주는 일부 IB들이 본사로부터 딜을 진행해도 좋다는 승인도 받지 못하는 등 수수료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시장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무조건 딜을 성사시키겠다"는 각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실권주를 떠안아야 하는 인수단(underwriter)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로 주간사 회사를 교체한 셈이다.

결국 KB지주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새로운 주간사로 선정했다. 증자가 임박한 상황에서 KB금융지주의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전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큰 일을 앞두고 작은 일에 연연하다 실리도 챙기지 못한 채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프로답지 못하다'는 오명만 남긴 셈이다.

유창재 경제부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