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남자 소변기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파리를 그려넣었다. 지저분한 변기로 고민하던 끝에 생각해낸 처방이다. 그러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소변을 보며 파리 그림을 맞히려 했고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은 80%나 줄었다. '깨끗이 사용합시다'라는 글을 붙여놓았을 때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낸 것이다.

미국 시카고의 레이크쇼어 도로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지만 곡선 구간이 많아 사고가 빈발했다. 시 당국은 커브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흰선을 가로로 그리면서 커브에 가까이 갈수록 선의 간격을 점점 좁아지도록 했다. 속도가 높아진다는 착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고건수가 확 줄어들었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선택을 유도하는 이른바 '넛지(Nudge)효과'의 사례들이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의미를 가졌다.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와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공저 '넛지'에서 소개된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됐다.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택을 이끄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의사가 수술해서 살아날 확률이 90%라고 말했을 때와,그 수술로 죽을 확률이 10%"라고 말했을 때 환자의 선택은 확연히 달라진다. 죽을 확률을 말했을 때 대다수의 환자는 수술을 거부한다. 그릇의 크기를 줄여 적게 먹는 것을 유도하거나 몸에 좋은 과일을 식당의 잘 보이는 곳에 놓아 쉽게 집어가도록 하는 것도 넛지에 해당된다.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넛지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선스타인 교수가 금융 환경 등 각종 규제를 총괄하는 백악관 정보 · 규제 담당 실장을 맡게 된 데 이어 그의 제안으로 소비자금융보호국(CFPA)까지 최근 신설됐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금융상품 등을 감독할 때 일방적 규제 대신 부드러운 개입으로 소비자의 충동적 선택을 줄여 경제위기 재발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의견을 전달하고 정책을 펴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일방통행이란 생각이 들면 반발을 사기 쉽다. 사회적 비용이 크게 불어나는 건 물론이다. 비정규직,심야학원,재개발,언론법 등 갈등을 빚는 현안이 너무 많아서 하는 얘기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효과를 내는 '변기 속 파리 그림' 같은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한 때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