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은 자수성가의 전형이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부산 연제구 거제동 판잣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밥을 먹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 집을 옮겨 다니며 '입주과외 교사'를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거제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꿈에 그리던 부산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입학금이 없어 다니지 못했다.

그에게 배움의 기회를 이어 준 사람은 집 근처 교회의 박성기 목사였다. 박 목사는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공민학교를 운영했다. 김 이사장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때 이 천막 학교는 브니엘실업고등학교란 이름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김 이사장은 이 학교 개교 이래 최초의 사시 합격자가 됐다.

특수통 검사의 대부였던 그는 검찰 내에서 집념이 강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의 집념은 수사 전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전두환 · 노태우 전 대통령 부정축재 사건,수서 비리 사건,공군 참모총장 인사 비리,율곡 비리,장영자 · 이철희 어음사기 사건,명성 사건,한국산업은행 대출 비리 사건 등 어느 하나 만만한 사건이 없었다. 그의 사시 동기(16기)들은 강단 있게 일을 처리하는 그에게 일선 검사 시절 '김폴레옹'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그는 검사로 공직을 마감하길 원했다. 대구지검장으로 있던 2003년 건국대에서 '공직 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딴 박사 학위가 예상치 않은 인생 행로를 걷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논문을 읽었다"며 "논문에 쓴 공직자 부정부패 방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아 달라는 얘기였다. 그는 이어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나 1년 만에 하차했다. 친기업적 성향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게 중도 하차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이런 성향을 눈여겨본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그에게 국가정보원을 맡겼다.

한편 행복재단은 김성호 이사장 주도로 지난 2007년 12월 설립됐으며 법치주의의 신장,경제 활성화 등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 창립대회 당시에는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종백 전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장,정동기 전 대검차장 등이 참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