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우울했던 지난 3월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꿈의 점수 200점'을 넘었다. 그날 우리는 모두 TV 앞에서 피겨를 즐겼다. 그리고 김연아가 나오는 광고를 많이도 봤다. 그런데 그날은 '광고 회피'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번에 걸친 재방송도 그 프로그램에 붙은 광고도 마냥 즐겁게 봤다. 뉴스에서는 김연아가 나오는 브랜드의 광고효과와 국가 브랜드에 미친 김연아의 힘에 대해 앞다퉈 보도했다.

확실히 그는 우리의 희망이고 우리의 영웅이다. 그래서 여느 연예계의 인기 모델과는 다른 귀엽고 아름다운 영웅으로 우리는 그를 받아들인다. 소비자들은 그의 많은 광고 출연을 나무라지 않는다. 지명도가 높은 광고모델 한 명이 여러 브랜드의 광고에 동시 출연할 때 브랜드 간의 이미지 혼동이 우려된다. 그러나 김연아가 나오는 광고에서는 혼돈이 없었다. 그것은 김연아의 특출함과 그를 출연시킨 각 브랜드 광고전략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라끄베르는 화장품답게 김연아의 정적인 얼굴모습을 주로 보여줬다. 매일유업은 김연아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운동선수면 누구나 하는 하드 트레이닝의 모습을 우유에 연결하는 표현전략을 구사했다. 현대자동차는 연습과정에서의 실수를 딛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젠 삼성 하우젠 에어컨 광고를 보자.에어컨 광고를 1,2월에 시작한다는 의미를 일반인은 이해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하우젠은 1월에 이미 홍보를 통한 프리론칭을 시작했다. 그것도 ATL 매체인 인쇄 매체를 통해서 김연아의 모델스토리와 삼성 하우젠의 신제품을 연결했다. 2월 론칭광고에서는 에어컨의 제품 특성인 바람소리 '씽씽 송'과 김연아의 장기인 춤을 활용한 광고를 내보냈다. 처음에는 다소 촌스럽지 않은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씽씽송은 10만여 건의 컬러링으로 다운로드됐다. 그의 특기가 삼성 하우젠 광고에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광고는 인기가 솟구치며 각종 TV의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다. 최근에는 몇몇 식품회사가 삼성 하우젠 광고를 패러디하는 '광고 패러디 광고'라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광고가 광고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입에서 입으로 입 소문도 타야 한다.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광고는 그 표현 방식을 다른 TV프로나 인터넷에서 패러디함으로써 그 효과가 증폭된다. 절정은 그녀가 세계 피겨선수권 금메달을 꿈의 점수와 함께 목에 걸면서 흘린 눈물을 그대로 광고 크리에이티브로 활용했을 때다. 삼성 하우젠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는 김연아와 함께 가슴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당신의 미소에 대한민국이 웃었고,당신의 눈물에 대한민국이 울었습니다. 당신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이 방송광고에서는 BGM(배경음악)과 자막이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의 목소리로 내레이션 처리된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다가왔다. 문자가 인간의 목소리보다 설득적일 때가 많다. 목소리에 의한 통화보다 간단한 문자 메시지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감동이 잊혀지기 전에 삼성 하우젠은 김연아가 주인공인 'Festa on Ice'에 스폰서로 나섰다.

물론 이 이벤트의 스폰서가 삼성 하우젠만은 아니었지만 삼성 하우젠 광고를 통한 김연아의 눈물을 기억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그날의 연기와 삼성 하우젠을 충분히 연결시켜 기억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삼성 하우젠 TV광고는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바람개비를 활용한 바람의 시각화가 바로 그것이다. 크리에이터란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술사다.

광고는 '미디어 전략'과 '창조성'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미디어 전략은 여러 매체의 광고를 넘어서 이벤트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실천이다. 창조성은 브랜드와의 연관성에 기반을 둔 차별화가 성공의 열쇠다. 그래야 동일 모델을 쓰는 다른 광고보다 적은 광고비로도 광고 선호도를 높일 수 있다. 기업도 경쟁사보다 높은 매출 신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오주섭(고려대 언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