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디스플레이(LCD),과자,화학약품,화장품,라면 스프,자동차 범퍼,플라스틱 등등.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 같은 제품들은 원료를 가루로 부수는 분쇄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와 관련된 설비를 만드는 분야를 분체(粉體) 산업이라고 일컫는다. 공장에서는 분체 설비를 이용해 나프타,프로필렌,에틸렌,광물 등의 고체 원료를 곱게 빻은 뒤 안료 등 여러 가지 부재료와 혼합해 제품을 만든다. 이런 이유로 분체 산업은 국가 산업의 밑거름이고 분체 기술은 제품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대가파우더시스템(대표 최은석)은 우리나라 산업화와 궤를 같이하며 성장해 온 분체설비 전문기업이다. 국내 분쇄기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공장의 절반가량은 이 회사가 만든 분쇄기로 생산 공정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사는 분쇄기와 관련기기인 혼합기,건조기,집진기 등 분체 설비를 100% 주문생산 방식으로 제작한다. 고객이 10명이면 10명 모두 가루로 만들고자 하는 원료와 생산제품이 다른 만큼 원료 특성과 제품 특성에 따라 기계를 맞춤형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가파우더시스템은 부산에서 양조업을 하던 최대식 회장(80)이 1970년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대가분체기계라는 천막 공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최고의 분체기계 회사인 호소카와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귀국한 지인이 "한국도 산업화가 시작됐기 때문에 분체 산업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설계도 한 장 없이 시작한 사업이라 초창기 1~2년은 만들어도 팔리지 않았다. 일본 기계를 수없이 뜯고 조립한 끝에 '분쇄기 같은 기계'를 만들었지만 도둑질해 배운 일천한 기술로 만든 기계인지라 온전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분체 설비는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이 중요한데 당시에는 역부족이었다"며 "5000만원짜리 기계를 납품했다가 수리비만 1억원 이상 들어가는 등 손해를 본 경우도 많아 수십 번도 넘게 회사를 접으려 했었다"고 말했다.

늘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술 개발에 꾸준히 투자해온 결과 1970년대 말부터 제품의 품질이 차츰 안정화됐다. 때마침 분쇄기 수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구로공단이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서 화장품,페인트,화학 회사 등에서 주문이 밀려왔다"며 "게다가 외채 증가를 우려한 정부가 대기업의 분쇄기 수입에 제동을 거는 등 운도 좋았다"고 밝혔다. 당시 기계산업 및 외자 담당 공무원들이 울산공업단지와 여수산업단지에서 설비를 구축하던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분쇄 설비를 수입해 오기 전에 대가분체기계를 찾아가 먼저 문의해 보고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을 정도였다. 이에 대기업들은 "우리나라에도 분쇄기 만드는 곳이 있었느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후 1990년대까지 밀려드는 주문을 거절해야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공장 하면서 대가분쇄기를 모르면 바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매년 70억~80억원의 매출을 유지했다.

특히 국내에는 경쟁사가 없어 항상 일본 독일 기업과 맞붙었다. 실제 삼성종합화학(현 삼성토탈)이 공장을 신설한 1996년 일본의 미쓰이마이닝과 납품 경쟁을 했다. 당초 12억원을 제시했던 미쓰이마이닝은 대가 측이 8억원을 써 내자 다시 10억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최 회장은 "당시 삼성 담당자의 팔을 붙들고 미쓰이마이닝은 기계가 고장 나면 3일이 걸려야 수리하러 올 수 있지만 대가는 세 시간이면 달려올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삼성 측은 3년 내 문제가 생기면 현금 보상을 하든지 아니면 새 제품으로 교체한다는 조건을 붙여 대가를 선택했다. 이때 납품한 분쇄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장을 일으키지 않았고 이후 대가파우더시스템은 삼성토탈의 추천 협력업체에 이름을 올렸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단독 경영에 힘이 부치자 최 회장은 1993년 대기업에 다니던 차남 최승욱 전무(49)를,1996년에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장남 최은석 대표(52)를 회사로 불러들였다. 두 아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최 회장은 힘을 얻었지만 곧바로 터진 외환위기로 회사 매출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련을 겪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공장 신 · 증설이 둔화되면서 분체기의 수요 전망도 밝지 않았다. 장치 산업은 한번 납품되면 교체 수요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최 회장은 "새로운 시대에는 젊은 사람들이 회사를 맡아야 한다"며 1998년 은퇴를 선언하고 최 대표에게 자리를 넘겼다.

최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동생인 최 전무와 함께 신성장 동력을 찾아 나섰다. 두 형제가 세계 각국의 산업 전시회를 돌아다닌 끝에 찾은 신규 진출 사업 분야는 냄새방지 설비.최 대표는 "앞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냄새방지 설비 분야를 신규 아이템으로 결정했다"고 소개했다. 2005년부터 일본에 분쇄기를 역수출 하기 시작한 이 회사는 지난해 태국,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한 800만달러를 포함해 15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 대표는 "대가파우더시스템의 분체기가 짧은 시간 안에 이 분야 세계 최고인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직원들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가장 중요시 여긴 아버님의 경영철학 덕분"이라며 "근속 20년을 넘긴 직원이 전체 60명 중 20%가 넘는다"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