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요즘 새로운 상상의 화두를 틀어쥐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제철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산화물 덩어리인 철광석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탄소(C)를 주입해 산소(O₂) 성분을 빼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철광석 내의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바꿔 배출해야만 순수 철성분을 얻을 수 있어서다. 현재의 상식으로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오염물질인 이산화탄소 발생을 피할 수 없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올초 취임하자마자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철강산업을 태생적 공해발생의 숙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는 없느냐는 것이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혁신적인 방안을 생각해냈다. 탄소 대신 수소를 활용하자는 것.'수소 환원법'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을 쓰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배출된다. 환경오염의 고민이 원천적으로 해소되는 셈이다.

단기간에 이뤄질 과제는 아니다.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 회장은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근엔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 연구소와 제휴도 맺었다. "앞으로 친환경 철강기술의 역사는 포스코가 써나가야 한다. " 정 회장이 내건 비전이다.

그의 이런 파격적인 상상력은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맥이 닿아 있다.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즐겨 읽고 임원들을 데리고 전람회를 찾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관심도 크다. 서울대 공과대학을 나와 제철소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지만,사고체계는 인문학 전공자보다 더 유연하다는 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평가다.

포스코를 이끌어 가는 방식도 독특하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원활한 소통'.포스코그룹 정보공유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경영철학을 담은 블로그를 개설했고 매일 아침 직원 10여명과 함께 조찬간담회도 열었다. 'CEO와 함께하는 아침'이라는 온라인 창구도 신설했다. 조직의 활력은 '소통'에서 비롯된다는 판단이다.

고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도 정 회장이 추구하는 목표다. 취임 첫 방문지로 주요 고객사인 현대중공업의 LNG(액화천연가스)선 건조현장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도 정 회장은 철강 대리점 사장들을 일일이 만나며 고객사의 어려움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다.

경영목표도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열린경영 △창조경영 △환경경영이라는 세 가지 문구로 간결하게 제시했다. 이 중 '열린'이라는 수식어에는 상생 사회공헌 소통 등의 뜻이,'창조'라는 말에는 기술개발 매출증대 신성장동력 등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저탄소 그린에너지 지속가능경영 등의 경영철학은 '환경'이라는 단어에 담았다.

인재육성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인재가 포스코의 궁극적인 인재상이라는 선언이다. 통섭형 임직원을 키우기 위해 신입사원을 1년 동안 제철소 생산 현장에 보내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그동안 포스코는 신입사원들을 6주 동안 인재개발원에서 교육한 뒤 사무직과 기술직 등 직군별로 구분해 부서에 배치해 왔다. 직원 대상 학습프로그램도 대폭 강화했다. 매달 둘째주 수요일엔 인문학 강좌를 연다.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데도 세심하다. 취임하자마자 적극적인 '금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라는 신념에서 나온 조치다. 처음엔 개인 취향까지 간섭한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이젠 대부분의 직원들이 정 회장의 생각에 공감한다. 자전거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도 직원들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친환경 제철소'라는 이미지는 덤이다. 지난달 16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철강사랑 마라톤 대회'에는 직접 자전거를 몰고 나오기도 했다.

정 회장은 꿈이 크다. '글로벌 빅4 철강회사'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항상 머릿 속에 새로운 먹을 거리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회장 선임 후 곧바로 신설한 '미래성장전략실'과 '녹색성장추진사무국'이라는 두 개 부서는 정 회장의 이런 고민을 현실화하는 도구다. 미래성장전략실은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업무를,녹색성장추진사무국은 환경관련 신기술 개발 등을 담당한다. 이 두 부서를 축으로 공격적인 기업 인수 · 합병(M&A)에도 나설 참이다.

정 회장은 "'브라운필드 투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M&A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브라운필드 투자'는 새로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와 기업을 통째로 사들여 운영하는 'M&A'의 중간 성격을 띠는 투자 방식이다. 설비가 낙후된 중소형 제철소를 하나 인수해 여기에 고로를 다시 얹고 생산시설을 대폭 개선하는 것 등이 '브라운필드' 영역에 속한다.

올해 투자계획도 수정없이 밀고 나갈 계획이다. 포스코는 올해 국내 투자 6조원과 해외투자 1조원을 합쳐 7조원가량을 집행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투자는 미래에 대한 보험"이라며 "특히 환경분야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떤 위기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정 회장이 꿈꾸는 포스코의 미래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