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개월 전쯤의 일이다. 금융시장을 잘 안다는 지인이 말했다. "코스피지수가 700선 밑으로 깨질 거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돈을 갖고 있는 것이 최고의 투자다. "

당시에는 기자도 이런 생각에 공감했다. 집값 하락이 투매를 불러오고,기업과 가계 부실로 이어지면서 고통과 공포가 뒤덮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거꾸로 갔다. 코스피지수는 걱정했던 것의 두 배인 1400선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떴다방'을 경계해야 할 정도다. '대박의 기회'를 노리면서 현금을 쌓아둔 채 기다렸던 사람들의 신세는 처량해졌다. 불과 1년도 안된 사이에 나타난 변화 치고는 놀랄 만한 일이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정부가 경기를 지나치게 부양한 것은 아니었을까.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물가가 급등하고,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지 않을까. 하이퍼인플레이션(초고물가)이 오면 어떡하지.지금이라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야 하나. 하지만 잘못 뛰어들었다가 상투를 잡으면….'

돈이 많이 풀리다보니 주변에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럴 만도 하다. 시중에 나도는 돈과 시중은행이 한국은행에 예치해둔 돈을 합한 본원통화는 지난 4월 61조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1% 늘었다. 경제위기의 근원지인 미국에서 본원통화가 1년 만에 두 배로 치솟은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금리인하 효과에다 추경예산 집행마저 본격적으로 가세해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있다.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검토하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고용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출구전략을 논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어불성설이다. 고용시장은 해빙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21만9000명 줄었다. 한 달 전인 4월 취업자 감소폭이 18만8000명이었던 것에 비해 상황이 나빠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28조4000억원의 추경예산을 쏟아부어 40만개의 일자리(정부목표)를 만드는 작업을 5월 초부터 시작했는데도 성적이 더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고용시장의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정부가 쏟아부은 돈으로 단단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부문이 없었다면 취업자는 30만명 이상 줄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다 다음 달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여당은 시행 시기를 늦추겠다고 방침을 정했지만 국회 통과는 불투명하다. 상당수 기업들에서 비정규직 해고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이들을 흡수할 여력이 민간부문에는 없다.

고용시장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산가격 상승이나 물가불안을 우려해 출구전략을 논하는 것은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고,하나라도 더 지켜야 하는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리를 올리거나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더 큰 위기의 아가리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는 자살행위다. 지금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저금리 정책을 거둬들이는 논의조차 할 때가 아니다.

현승윤 경제부 차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