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등을 문제삼아 보장한도를 기존 100%에서 90%로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실제 지출한 의료비 전액을 보험사들이 지급하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게 정부의 논리입니다. 이 같은 내용의 정부안이 확정되면 앞으로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자가 실제 지출한 의료비의 90%만 지급하면 됩니다. 보험사 입장에선 지급해야 될 보험금이 줄어드니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100% 보장상품을 팔아온 손해보험업계는 정부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긴급 사장된 회의를 개최해 건의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으는가 하면 손보노조와 설계사들은 집단시위도 불사하기로 결의하는 등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처럼 손보업계가 정부안에 반대하는 데는 나름데로 이유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사실은 후발주자인 생보사에 시장을 뺏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정액형 의료보험만 팔아오던 생보사들은 뒤늦게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시장에 진출하면서 100%가 아닌 80% 보장상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후발주자인 만큼 관련 상품에 대한 통계나 노하우가 없어 손보사처럼 100% 보장상품을 판매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장한도가 작다보니 100%를 보장하는 손보사 상품에 비해 메리트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실손형 의료보험의 보장한도를 각 사별 자율에 맡기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제한하게 되면 손보사나 생보사 모두 이에 따라야 합니다. 결국 손보사나 생보사 상품에 사실상 차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생보사 입장에선 정부안이 그저 반갑고 고마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삼성생명과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이른바 대형 생보사들은 민영의료보험 보장제한 조치의 최대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손보업계간 싸움으로 치부하며 한 발 물러나 있습니다. 자칫 적극적으로 정부안을 지지하다간 생보업계가 국민건강을 담보로 정부에 로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보사들도 지난해와 달리 정부안에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당초 80%로 예상됐던 보장한도가 90%로 완화됐고,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주도했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엔 주무부서인 금융위원회가 안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계에선 이미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보장제한 조치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당초 민영의료보험 보장제한 논쟁의 중심에 섰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그룹내 조율을 거쳐 입장정리를 끝낸 상태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문제는 정작 의료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국민과 소비자들의 목소리에는 정부나 업계 모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험소비자연맹, 보험소비자협회 등 그동안 말많던 소비자단체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선 애써 침묵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업계, 소비자단체 모두 국민건강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박병연기자 bypark@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