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지니고 살아갈까. 지난 4월 한국기호학학회에서 주최한 봄 학술대회의 제목이'서울의 기호학'이었다. '서울'에 대한 다양한 기호학적 스펙트럼이 펼쳐진 가운데,필자는'2000년대 신춘문예 소설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를 발표했었다.

대한민국 수도는 일제 강점기에 경성으로 불리다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서울(서울자유시)'로 명명되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울은,해방직후에 이태준의'해방직후',박경리의'불신시대'처럼 역사적 사건과 이데올로기의 장소에서,60년대 김승옥의'서울 1964년 겨울'을 거치면서 벽으로 나누어진 허무의 장소로,70년대 황석영의'아우를 위하여'에서 고향을 떠난 이들의 낯선 정착지로,80년대 강석경의'숲 속의 방'처럼 자기 방을 갖지 못해 떠도는,그래서 점점 소외된 개인의 벽과 방으로 변모해왔다.

한편,2000년대 서울의 이미지는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작품집(2001~2009)에 실린 단편소설 총 117편 중 '서울'이라는 기호와 서울의 특정 지명을 사용한 13편을 분석한 것인데,우선 서울 비거주자들은 서울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을 나타낸다.

서울에서 특정한 형태의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울입성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무등일보 고현진 '잉글랜드 메디컬 센터 김 대리',경향신문 허혜란 '내 아버지는 서울에 계십니다'). 하지만 동경하는 자와 동경대상 사이를 연결할 사람이나 매개체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이유없이 찢겨버려 양쪽은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 서울 거주자들은 서울을 큰 도로나 집 등 한곳에 감금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방으로 막힌 길은 드디어 오갈 데 없는 섬으로 환원되고,그 안에 철저하게 소외된 인간존재 상태가 드러난다(조선일보 권정현 '수',광주일보 류옥경 '망발풀이',문화일보 박현경 '섬 안의 섬').그러므로 서울 거주자나 비거주거자의 공통된 관점은,서울은 이미 너무 복잡하게 연결되어 하나가 막히면 전체가 막히거나 하나가 찢어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공간으로 표현된다(세계일보 신현대'공어와 빙어', 대전일보 심옥녀'제부도').

급기야 소설 속 서울은 사정없이 찢기면서 경계가 무너진다. 무너진 경계 사이로 저급한 서구문화가 틈입한다. 서울은 화려한 조명과 술의 향연 속에서 재키라는 한국인 여성이 춤을 추는 곳이며(경향신문 백진'무스타파'),아일랜드 계 미국인인 애인과 와퍼 세트를 먹고 컴퓨터를 통해서 사랑을 나누며(중앙일보 김채린'모호함에 대하여'),흑인 남자가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고 한국여자를 호통치는 곳이다(동아일보 이은조'우리들의 한글나라').서울에서는 사람의 이름도 사라지고,너와 나의 구분도 없어지고,'누군가'가 '누군가'를 좇고 쫓기는 곳이다(중앙일보 김성진 '다이어트 클럽').

결국,2000년대 등단한 작가들이 만들어낸 '서울'은,너무 복잡하게 연결되어 찢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상처사이로 외래문화가 기생하고 번식하는 바람에 우리 고유한 것들이 상실되는 장소이다.

현재 서울의 모습에 견주어 부인하기 어려운 이미지이다. 2001년 한국일보 소설 당선작 '잃고,묽고 희박한'에서 작가 남문석은 이런 상태를 '찢긴 청바지'로 상징화하고 있다. 입기도 전에 찢어진 상태로 등장한 서구의 옷이 너덜너덜 우리 문화의 중심을 장악한 것이다. 찢긴 청바지에 대해 소설 주인공이 던지는 메시지도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찢어진 자아를 표현한 거래요. " 때로 픽션이 삶의 진실을 더 잘 보여줄 때가 있다.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