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들의 PL(자체 상표=PB) 상품은 이제 전 세계적인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았습니다. "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PL박람회'에서 만난 브라이언 샤로프 PL제조회사협회(PLMA) 회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1970년대 유럽의 대형 유통매장에서 본격화한 PL 상품 바람이 유럽 · 북미뿐 아니라 아시아 남미 등으로 확산되면서 세계 유통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입증하듯 PL박람회 전시장은 90여개국에서 몰려든 5000여명의 유통업체 바이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 박람회는 PL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 전 세계 유통업체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자사 제품을 보여주고 판매를 상담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PL 시장이다. 65개국 1700여개 제조업체가 부스를 차렸고 유통업체들이 참여하는 아이디어 전시관에는 월마트,까르푸,테스코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업체들이 모두 출품했다. 국내 유통업체로는 이마트가 유일하게 참가했다.

샤로프 회장은 "올해 한국 중국 터키 등 5개국이 새로 참여하는 등 매년 PL박람회 규모가 10%씩 커지고 있다"며 "이는 PL 시장의 규모가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PL,소비자 '신뢰'를 먹고 큰다

PL(Private Label)은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생산을 주문해 만든 상품을 자체 상표를 붙여 자사 매장에서만 파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마트를 제외한 유통업체들은 'PB'(Private Brand)라고 부른다. 제조업체들이 자체 브랜드를 붙여 여러 유통매장에서 동시에 파는 'NB'(National Brand)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PL은 대형 유통업체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PL은 한 업체의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독점 상품이기 때문에 효율을 내려면 전국적으로 다수의 점포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를 능가하는 시장 파워를 갖춰야 PL 시장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PL 상품은 소비자와 바로 만날 수 있는 '유통 매장 진열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제조업체들이 NB 상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볼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마케팅과 유통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판매가격을 NB보다 낮출 수 있다. PLMA에 따르면 세계 유통업체들의 PL 가격은 동급의 NB보다 평균 31% 싸다. 소비자에게 동일 품질의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관건은 소비자들의 '신뢰'다. 샤로프 회장은 "PL이 등장한 초기에 유통업체들이 NB보다 훨씬 떨어지는 조악한 수준의 상품을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기도 했다"며 "PL 시장이 급속히 성장한 것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상품을 만들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설명했다.

세계 PL 시장은 월마트,까르푸,메트로,테스코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을 통해 연간 1조달러 규모(2007년 기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 스위스 독일 벨기에 등 유럽에서 PL의 유통시장 점유율이 40%를 넘어섰다. 업체별로는 미국 월마트의 경우 PL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40%에 달한다. 특히 매출 상위 100개 상품 중 47개가 PL 상품이다. 영국 테스코는 PL 비중이 50%,독일 메트로는 35%에 이른다.

◆PL은 유통업체 생존을 위한 '핵심 키워드'

국내에서도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자체 상표 브랜드와 품목 수를 늘리고 진열공간을 확대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7년 10월 대규모 PL 상품을 선보이며 'PL 전쟁'에 불을 지핀 이마트는 현재 23%인 PL 매출 비중을 2012년 35%로 높일 계획이다. 홈플러스는 현재 26%에서 2012년 40%로,롯데마트는 19%에서 30%로 각각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PL이 유통업체의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경우 전국 점포수가 400개에 육박하면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든 데다 경쟁 심화로 점포별 가격이나 행사 패턴,심지어 매장 구조까지 닮아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NB 상품만 팔아서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이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점포별 차이가 줄어들자 점점 접근성 위주로 매장을 선택하고 있다"며 "고객이 해당 점포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차별화 요소로 PL 상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들이 NB 상품을 모방한 수준에서 탈피,시장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프리미엄급 PL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익성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PB 상품의 마진율은 NB 상품보다 일반적으로 5~10%포인트 높다"며 "PB 상품의 매출 비중이 높아지면 그만큼 수익성도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