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

여권의 쇄신 논의를 보면 열린우리당을 떠올리게 된다. 열린우리당과는 색깔면에서 정반대편에 위치해 너무나 다를 것 같은 한나라당이 걷고 있는 길은 유사하다. 높은 지지율 속에 과반의석의 거대 여당으로 출발한 한나라당이 내부 갈등과 무력감 속에 잇단 재보선 패배로 민심을 잃었던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고 있다.

두 당은 과반의석을 확보,강한 여당으로 출발했지만 채 1년도 안돼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노무현 탄핵 역풍'덕에 152석을 차지했던 우리당은 1년여간 국가보안법 등 이념법안 처리에 매달리다 민심을 잃었다. 170석의 한나라당도 각종 경제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다짐했지만 '모래알당'이라는 비아냥 속에 소수 야당에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여당이 돼 버렸다. 보수층마저 등을 돌리는 이유다.

선거패배 이후 불거진 쇄신 논란도 닮은 꼴이다. 쇄신파가 대폭 개각을 포함한 여권의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청와대가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다보니 "당 대표라도 갈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비본질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총선 이후 치러진 재보선에서 연전연패,0 대 40이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선거에서 질 때마다 대표(당 의장) 퇴진론이 불거졌다. 대표가 줄사퇴했다. 그러다보니 대표의 평균 임기는 100일을 겨우 넘길 정도였다. 덕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임기 2년 동안 7명의 여당 대표를 상대해야 했다.

한나라당 쇄신 논란의 종착역도 박희태 대표의 거취다. 쇄신파는 "박 대표의 사퇴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청와대는 난색을 표한다. 대안이 마땅치 않은 터에 박 대표 퇴진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쇄신파는 연판장을 돌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당내 불협화음이 쉽게 해소되긴 어려울 것 같다.

당내의 뿌리 깊은 계파대결도 판박이다. 열린우리당은 전신인 민주당 내홍의 산물이었다. 당 개혁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백바지(개혁)-난닝구(실용)논쟁'을 낳았고 결국 두 세력은 결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이 탈당해 만든 게 열린우리당이었다. 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 세력과 중도파 간의 대립으로 주요 정책에 대해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나라당의 친이 친박 대결은 이미 도를 넘었다. 이들 사이에 신뢰라는 용어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친이 친박의 갈등은 보수세력의 분열을 의미한다. 한 지붕 두 가족의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와 총선을 거치면서 결국 결별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게다가 청와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은 거침없는 말과 코드인사로 민심이반을 불러와 임기 내내 고전했다. 이 대통령도 임기초반 조각 실패와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MB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적지 않다.

한마디로 여권이 떠난 민심을 되돌리기는 어려운 구조다. 적어도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손잡지 않는 한 상황은 더 나빠질 개연성이 다분하다. 0 대 40 기록과 4년8개월여간 지지율 10%대에 묶여있었던 우리당의 치욕이 이젠 한나라당 얘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