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미국 뉴저지 앞바다에선 호화로운 선상결혼식이 열렸다. 범죄조직에 위장잠입해 있던 수사요원이 가짜 딸을 신부로 내세운 가운데 위조지폐와 무기,마약 등의 밀수 혐의자들을 대거 하객으로 초청했다. 미연방수사국(FBI)이 현장을 덮쳐 수십명을 체포했다. 결혼식에 쓰인 배 이름을 따서 '로열 참'으로 명명된 작전이다. 비슷한 작전이 '스모킹드래곤'이라는 이름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도 펼쳐졌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국 범죄조직이 북한에서 제조된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슈퍼노트'를 비롯 담배 마약 등을 밀수했다는 증거를 잡았다. 계속된 수사로 북한과 연루된 범죄자들이 마카오 은행을 자금 창구로 활용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같은해 9월 미 재무부는 BDA(방코델타아시아)를 '주요 자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자금을 동결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슈퍼노트가 처음 발견된 때는 1989년이다. 이 위폐는 진짜와 마찬가지로 75%의 면섬유와 25%의 마로 제작된 화폐용지에 요판인쇄방식으로 찍어낸다. 무늬와 위조방지장치가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 적외선감별기나 특수확대경으로만 감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유통된 슈퍼노트는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엔 부산에서 9904매의 슈퍼노트를 밀반입한 일당이 구속되기도 했다.

오극렬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그의 일가가 슈퍼노트 제작과 유통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소식이다. 오 부위원장은 후계체제 구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주목 받고 있다. 북한으로선 쪼들리는 살림에 미사일 발사,핵실험 같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일을 무리하게 벌이다 보니 위조지폐라도 찍어내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못된 행위'가 그렇듯 이것도 소탐대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슈퍼노트를 근거로 다시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집권층이야 무슨 수를 쓰든 제 살길을 찾겠지만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일반 주민들의 고통이 더 심해진다는 게 문제다. 이런 북한과 동족이라는 '죄'때문에 우리도 직 · 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게 영 개운치 않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