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 현대모비스와 삼성LED가 차량용 LED(발광다이오드) 헤드램프를 공동 개발하기로 공식 발표하기 전의 일이다. 양사의 연구소장 등 실무진이 2년 가까이 공을 들인 끝에 결실을 맺었는데 처음엔 '정말 삼성과 손 잡는거야?'라는 내부 지적도 많았다. 영원한 숙적이라는 수십년째 이어져 내려 온 감정의 골 탓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이기기 위해'라는 큰 뜻 앞에 라이벌 의식은 눈 녹 듯 녹아내렸다.

글로벌 위기는 기업 간 장벽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게 현실이다.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의 전방위적인 제휴가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 1,2위를 다투는 삼성그룹과의 제휴를 비롯해 현대자동차는 작년 5월엔 마이크로소프트와 차량용 IT 및 인포테인먼트 분야의 협력을 약속했다. 마케팅 차원에서의 제휴도 활발하다. 항공사,통신업체가 갖고 있는 방대한 소비자 정보는 마케팅의 보물창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적과의 동침도 서슴없이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은 재계 맞수인 삼성과의 제휴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4월 30일 현대모비스와 삼성LED가 기술협약을 맺었고,최근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차량용 반도체 공동 개발을 위해 실무 접촉을 진행 중이다. 3세 경영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41)와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39)이 자주 만나는 가까운 사이여서 향후 두 그룹 간 협력이 더욱 긴밀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가 삼성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자동차에서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다. 삼성과 공동 보조를 취하면 비싼 로열티를 물지 않아도 된다. 현대모비스는 삼성LED와의 협력으로 경쟁 차량 대비 장착비용을 10~30% 싸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가 삼성전자와 자동차용 반도체 공동 개발에 힘을 쏟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자동 방향조절 램프 등 첨단 전자장비가 많아지면서 요즘 신형 에쿠스 같은 고급 차량에는 ECU(중앙컴퓨터)가 100개쯤 들어간다. 컴퓨터 CPU처럼 ECU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핵심 기술인데 현대 · 기아차는 100% 외국산을 쓰고 있고,삼성전자조차 아직 손을 못댄 분야다.

현대차도 해외 기업과의 제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손잡고 제네시스 스페셜 에디션을 공동 개발키로 했다. 프라다의 디자인을 통해 재탄생할 3대의 차량 중 1대는 지난 4월 서울모터쇼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주유소를 잡아라

SK에너지,현대오일뱅크 등 주유소를 운영하는 기업과도 손을 잡고 있다. 연결 고리는 블루투스 송수신 장치(근거리 양방향 무선 네트워크)라는 첨단 IT 시스템.

기본 원리는 단말기를 장착한 차량이 블루투스 장치가 설치된 주유소에 진입하면 자동차의 각종 전자 정보가 블루투스 장치에 입력되는 식이다. 전자 정보에는 기계적인 결함,타이어 문제 등을 제외하면 차량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들어간다.

각종 고장 진단은 물론,엔진 오일을 갈아야 할 시기를 알려주는 등 소비자로선 주유소를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 정비소에 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는 수집된 정보를 고객 동의를 거쳐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주유소로선 고객에게 첨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을 많이 모으는 집객효과를 거둘 수 있다. 1석3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현대 · 기아차는 이를 위해 작년 12월 말 SK에너지와 관련 협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달 13일 현대오일뱅크와도 서비스 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공동 마케팅이 좋다

서로의 고객 DB를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 제휴도 활발하다. 현대차는 지난달 27일 KT와 공동마케팅 협정을 맺고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새 차를 최대 100만원까지 싸게 살 수 있는 결합상품을 선보였다. 지난 1일부터 2011년 5월(출고일 기준)까지 현대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KT '쿡 인터넷+쿡 TV'상품에 신규 가입하면 40만원의 차값을 할인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동통신 '쇼 현대차 요금제'에 가입하면 40만~100만원의 차값 할인 혜택을 준다. 자동차와 연계한 통신상품 및 제휴 프로모션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로선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진 통신업체의 고객 DB망을 활용해 판매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KT 관계자는 "자동차와 통신산업 최고 브랜드 간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소비자 혜택이 커지고 자동차 산업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