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만화 100년

1960,70년대엔 동네 만화가게가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변변한 놀거리가 없었던 탓에 용돈만 생기면 어른들 눈을 피해 한달음에 달려가곤 했다. 알전구 불빛 아래서 등받이도 없는 나무의자에 앉아 만화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퀴퀴한 냄새에 먼지까지 풀풀 날리는 곳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꿈의 공간이었다.

라이파이(산호) 의사 까불이(김경언) 땡이(임창) 짱구박사(추동성) 고인돌(박수동) 꺼벙이(길창덕) 독고탁(이상무) 각시탈(허영만) 고바우(김성환)… 만화속 주인공들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울고 웃었다.

아이들의 정서와는 달리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어른들은 '만화 보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부모가 만화가게로 찾아와 아이들을 끌고 가기도 했다. 당국의 검열이 심했던 것은 물론이다. 엄마 아빠가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남녀가 한방에 있다'는 이유로 삭제하고 이슬 맺힌 장미꽃 그림을 '화려함을 조장한다'며 잘라내는 식이었다.

우리 만화시장은 연 매출 7616억원(2007년,한국콘텐츠진흥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과학 학습만화 'Why?'시리즈가 2001년 첫 출간된 이후 2000여만부나 팔린 것을 비롯 '마법천자문'1200여만부,'메이플스토리' 880여만부 등 대형 히트작도 나왔다. '마법천자문'은 뮤지컬로 제작돼 공연되고 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개발중이다.

한국만화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3일부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우리나라 첫 만화로 꼽히는 이도영 화백(1884~1933)의 만평이 1909년 6월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지 꼭 100년이 된 것이 계기다. 주요 만화작가 250여명의 원화 1500여점과 희귀 만화책,만화잡지 등이 망라된다. 인기만화의 주인공들도 모두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엔 100여개 만화 관련 학과가 개설돼 매년 수천명의 전문인력이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산업'으로서의 만화는 갈 길이 멀다. 일본 미국 등에 비해 소재의 다양성이 뒤지는데다 유통구조 개선,파생상품 개발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독자를 더 늘리고 해외시장도 개척하려면 무엇보다도 개성있는 그림,치밀한 구성,재미 있는 스토리 등 '기본'을 끌어올려야 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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