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관심ㆍ사랑은 독립심 저해, 작품처럼 자식도 손떼야 완성돼
[박성희 칼럼] 부모 노릇을 잘 하려면

영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의 주인공 권 여사는 어머니가 납치됐다는데도 걱정은커녕 제 생각만 하는 자식들을 보며 가슴을 친다. "남은 건 후회와 미안함뿐이다. 돈 버느라 바빠 자식이 어떻게 크는지도 몰랐다. " 그리곤 이제부턴 때려서라도 가르치겠다고 다짐하지만 멋대로 큰 자식들은 달라진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TV 드라마 '찬란한 유산' 또한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할머니는 집안 재산을 믿고 빈둥거리는 데다 행동마저 안하무인인 손자를 바로잡기 위해 금전적 지원을 끊는 건 물론 재산도 일절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유산을 받고 싶으면 생활태도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부모의 돈과 지나친 사랑이 자식은 물론 부모까지 벼랑으로 몰아가는 일은 현실에도 적지 않다. 조기 유학을 떠난 아이를 위해 아내마저 딸려 보낸 뒤 유학비에 생활비까지 대느라 여관방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숨진 아버지는 "자식만은"에 매달려 외롭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 땅 수많은 기러기 아빠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뿐이랴.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연봉 많고 구조조정 걱정 없는 직장에 취업시키겠다고,남보다 잘 살도록 해주겠다고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곤 세상의 지탄을 받는 정치인과 유명인사,자식의 사업자금을 대거나 빚 보증을 섰다 곤경에 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왜 그렇게까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성적과 대입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마당에 부모의 뒷받침 없이 혼자 공부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데엔 긴 말이 필요 없고,다 큰 자식의 아쉬운 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해지는 일 또한 쉽지 않은 탓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부모 노릇을 잘할 수 있는 비책이 있긴 있는 건가. 알 길 없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한국 부모들이 자식에 관한 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면엔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게 작용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자식한테만은 내가 겪은 고생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심정 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외롭고 고단한 기러기아빠가 그토록 많고,자식 때문에 온갖 수모와 망신을 당하는 인사를 보면서도 여전히 같은 일을 하는 아버지들이 안 줄어들 리 없지 않은가.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입찬 소리 못한다고 하거니와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을 볼 때마다 남의 일같지 않다. 일하는 엄마의 미안함 때문에 늘 전전긍긍한 게 아이들의 의지와 독립심을 저해하거나 세상살이에 필요한 '을'의 자세를 익히지 못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무한경쟁에서 견디려면 누가 뭐래도 웃어넘기고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서도록 강하게 키웠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건 아닌가도 의심스럽다.

그러니 어쩌랴.부모 노릇엔 거듭되는 시행착오만 있을 뿐 정답은 없어 보이는 것을.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이들의 조언도 많지만 처한 상황이 같지 않고 아이들의 자질과 품성도 다르니 그대로 한다고 똑같이 될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에 대한 반응은 "누가 그렇게까지 해서 키워달랬어요"인 수도 많다.

권순분 여사처럼 후회와 미안함에 떨지 않으려면 늦어도 스무살 무렵부터는 부모 노릇 너무 잘하려 기쓰지 말고,욕심과 기대도 좀 줄이고,적당히 손을 떼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명작을 만들자면 뭔가 자꾸 더하지 말고 한순간 과감하게 손을 딱 떼는 게 좋다는 얘기를 기억하면서.

그래야 어려움이 닥쳐도 혼자 헤쳐나가고,누군가에게 먼저 손 내밀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겸손과 용기도 배울 게 틀림없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사르트르)이라는 얘기도 있고,실제 역사적 인물 가운데엔 유복자가 적지 않다. 마호메트,애덤 스미스,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그런 경우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