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급지어(殃及池魚)라는 말이 있다. '재앙이 연못 물고기에게 미치다'는 뜻으로 이해당사자들의 싸움으로 엉뚱한 제3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를 두고 쓰는 고사성어이다. 지난 4월 마지막 날 '금융지주회사법'개정안(소위 공성진 발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사태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하겠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에서 벌어진 복잡한 내막이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이 법안의 개정을 학수고대해 온 금융당국이나 법 개정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국내 금융업 종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금산분리 완화라 일컬어지는 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 주식 보유제한을 현행 4%에서 10%(본 회의 상정시 9%로 조정)로 확대하는 내용이 있다. 이는 오랜 기간 각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논란이 되었던 사안이었지만 정치권이 수용하면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개혁 법안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한없이 지연돼온 우리금융과 산업은행,기업은행 등의 민영화도 촉진될 것이다.

다음은 은행을 지배하지 않는 금융지주회사,즉 비은행 금융지주회사(보험 및 금융투자지주회사)에 대해 금융회사가 아닌 자회사의 지배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사실 이 조항은 그동안 핵심 쟁점에서 비켜나 있었지만 이번 법안 부결을 계기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반영하고 자산운용 측면에 있어 비은행 금융회사의 특성을 감안해 그동안의 과도했던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를 앞세워 이 개정안이 특정 대기업그룹을 비호하고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지주회사의 일반 제도개선과 규제완화에 관한 조항들이다. 자회사 임직원간 겸직 허용,업무위탁 범위의 확대,자회사에 대한 출자한도 규제 개선,지주회사의 해외진출시 자회사와 공동출자 허용 등이 핵심내용이다.

이러한 것들은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쟁점도 되지 않았지만 현재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한 금융회사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제도개선이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는 금융회사의 인수합병과 해외진출,시너지 극대화가 보다 용이해 지면서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급변하는 국내외 금융환경 속에서 법과 제도의 미비로 대형화 · 겸업화의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나라 금융그룹들에는 이 제도개선안이 앞의 두 가지 이슈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 핵심 이슈였던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로 법안 개정이 지연되고 있다. 당면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정치권은 오로지 정쟁만 능사로 삼아 왔다. 그동안에도 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추가경정예산 및 각종 개혁조치와 민생대책을 놓고 국회가 고질적으로 발목을 잡아왔다.

6월 임시 국회에서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두고 여야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정치권은 국가적 위기 극복과 국익을 위해,그리고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느냐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에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어떠한 명분으로도 법 개정이 정쟁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웅 <성균관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