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호저축은행들이 부실채권(NPL) 시장에 몰려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돈을 빌려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워진 저축은행들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실채권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부실채권 시장을 주도해 온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진 자리를 저축은행들이 메우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과열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외환은행이 지난 21일 진행한 2090억원 규모(원금기준)의 부실채권 매각 입찰에서 진흥저축은행이 절반을 넘는 116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진흥저축은행은 작년 하반기에도 1110억원어치의 외환은행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지난달 초 이뤄진 3050억원 규모의 하나은행 부실채권 입찰에서는 경기저축은행이 2070억원,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 980억원어치를 각각 인수했다. 은행들이 내놓은 부실채권을 국내 대형 저축은행들이 싹쓸이하고 있는 셈이다.

저축은행들이 부실채권 매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때부터 부실채권 처리를 전담했던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실채권 개별 입찰경쟁 참여가 지난해 8월 금지됐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의 부실채권 매각 입찰에는 모두 15곳이 예비 신청을 했는데,이 중 저축은행이 10여곳(현대스위스 경기 한신 삼화 솔로몬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부실채권 매각 입찰에도 3~4곳의 저축은행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저축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부실채권 인수에 나서면서 낙찰 가격도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21일 진흥저축은행이 써낸 외환은행 부실채권 낙찰 가격은 원금의 65% 수준으로 작년 하반기(60%)보다 5%포인트 높아졌다. 경기저축은행과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하나은행 부실채권 낙찰가도 각각 65%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낙찰가에 대해 상당수 금융권 관계자들은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가격"이라며 "부실채권 시장이 이상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로 은행 등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늘어난 반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계가 인수전에서 발을 빼 입찰경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며 "저축은행이 높은 낙찰가로 물량을 쓸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낙찰가격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여 부실채권 가격에 거품을 끼게 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회사마다 채권에 대한 가치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낙찰가는 달라질 수 있다"며 "현재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 할인율을 낮게 책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들은 매입한 부실채권 처리로 연 10~15%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자산 건전성을 높이려는 은행들의 부실채권 매각 움직임과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려는 저축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저축은행의 부실채권 시장 진출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동균/이태훈 기자 kdg@hankyung.com